'기도하라'는 말을 많이 듣게된다.
신자가 아닌 사람이 들으면,
'뭐야 그게?'라고 할 말마디다.
이해한다.
왜냐면,
신자들조차 '기도하라'는 말을 하거나 들으면서
그저 형식적으로,
말 그대로 바리사이들의 위선처럼
자기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로 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기도'는 뭘까?
'대화'란다.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
그렇게 배워오긴 했는데,
이 대화 좀 이상하다.
대화는 쌍방간의 말의 주고받음인데,
'기도'라는 대화는 지 혼자 지껄이는 것 같다.
흠...
여기까지 와서 생각이 막히면 그나마 다행이다.
많은 신자들은 그냥 지껄인다.
자기가 원하는 것만 잔뜩 지껄여놓던지
아니면 정해진 형식에 따라서 지껄인다.(성무일도, 로사리오 - 열심한 신자들 보면 좀 화날수도 있겠다 ㅎㅎㅎ)
기도에는 분명 응답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응답을 듣고있고 알고있다.
꼭 목소리로 들려야 응답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초짜다.
하느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말을 건내신다.
많은 경우에 하느님이 먼저 건네신다.
길가다 거지를 만났다.
분명 하느님이 먼저 말을 건다.
'어이 좀 도와주지를?'
근데 우리는 생깐다.(생깐다는 말은 무시하다의 젊은이들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방금 들린 건 아무것도 아닌 거라고 생각해 버리던지,
아니면 벌써 변명거리 찾기에 고심이다.
'에이, 저런 사람들 사실은 다 부잔데 저렇게 나와서 구걸하는거야.'
이런 생각 나도 해봤다. 그래서 안다. ㅎㅎㅎ
이렇게 하느님 목소리를 듣고도 생까고 나서는
저녁에 돌아와 지껄이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구절들 일색이다.
지껄이면서 스스로 성인이라도 된 듯이 착각한다.
실제로는 쫌생이, 구두쇠면서... ㅎㅎㅎ
미운 사람 만났다.
'어이, 오늘은 니가 가서 한번 웃어주지?'
하느님이 말 걸었다.
근데 또 생깐다.
변명거리 마구마구 찾는다.
'저 인간은 저런 면에서 결코 바뀌지 않을 인간이야. 내가 하는 노력은 아무 상관 없어.'
다행이다... 양심의 소리가 멎는 것 같다.
아니다 바보야. 양심 무뎌진거다. ㅎㅎㅎ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또 하느님께 지껄인다.
성무일도든 로사리오든 하다못해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오니'라는 말이 담긴 주님의 기도든...
얼씨구... 아름다운 말 잔치다 그려.
기도는 '대화'다.
하느님은 이미 말을 건네었고,
남은 건 우리의 응답이다.
이 응답은 아름다운 말마디로 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삶으로 하는 응답이 되어야 한다.
해 본 사람은 안다.
그리고 '감사드린다'
그래서 기도의 궁극적 지향점은 감사와 찬미가 된다.
진짜로 '기도하고' 온 사람은,
성무일도 바치면서 운다.
어쩜 말마디들이 지가 살아온 그대로라서 그렇다.
아니면, 성무일도가 짐이다.
이상하게 양심이 찔리는 말마디들 천지라서 그렇다.
ㅎㅎㅎㅎㅎ
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아니구나, 페이스북은 눈으로 읽는 거니까,
눈 있는 사람은 알아읽어라.
기도하자.
오늘도...
레지오 모임 가야지.
안가면 하느님이 자꾸 가라 할 것 같다. ㅋ
신자가 아닌 사람이 들으면,
'뭐야 그게?'라고 할 말마디다.
이해한다.
왜냐면,
신자들조차 '기도하라'는 말을 하거나 들으면서
그저 형식적으로,
말 그대로 바리사이들의 위선처럼
자기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로 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기도'는 뭘까?
'대화'란다.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
그렇게 배워오긴 했는데,
이 대화 좀 이상하다.
대화는 쌍방간의 말의 주고받음인데,
'기도'라는 대화는 지 혼자 지껄이는 것 같다.
흠...
여기까지 와서 생각이 막히면 그나마 다행이다.
많은 신자들은 그냥 지껄인다.
자기가 원하는 것만 잔뜩 지껄여놓던지
아니면 정해진 형식에 따라서 지껄인다.(성무일도, 로사리오 - 열심한 신자들 보면 좀 화날수도 있겠다 ㅎㅎㅎ)
기도에는 분명 응답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응답을 듣고있고 알고있다.
꼭 목소리로 들려야 응답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초짜다.
하느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말을 건내신다.
많은 경우에 하느님이 먼저 건네신다.
길가다 거지를 만났다.
분명 하느님이 먼저 말을 건다.
'어이 좀 도와주지를?'
근데 우리는 생깐다.(생깐다는 말은 무시하다의 젊은이들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방금 들린 건 아무것도 아닌 거라고 생각해 버리던지,
아니면 벌써 변명거리 찾기에 고심이다.
'에이, 저런 사람들 사실은 다 부잔데 저렇게 나와서 구걸하는거야.'
이런 생각 나도 해봤다. 그래서 안다. ㅎㅎㅎ
이렇게 하느님 목소리를 듣고도 생까고 나서는
저녁에 돌아와 지껄이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구절들 일색이다.
지껄이면서 스스로 성인이라도 된 듯이 착각한다.
실제로는 쫌생이, 구두쇠면서... ㅎㅎㅎ
미운 사람 만났다.
'어이, 오늘은 니가 가서 한번 웃어주지?'
하느님이 말 걸었다.
근데 또 생깐다.
변명거리 마구마구 찾는다.
'저 인간은 저런 면에서 결코 바뀌지 않을 인간이야. 내가 하는 노력은 아무 상관 없어.'
다행이다... 양심의 소리가 멎는 것 같다.
아니다 바보야. 양심 무뎌진거다. ㅎㅎㅎ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또 하느님께 지껄인다.
성무일도든 로사리오든 하다못해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오니'라는 말이 담긴 주님의 기도든...
얼씨구... 아름다운 말 잔치다 그려.
기도는 '대화'다.
하느님은 이미 말을 건네었고,
남은 건 우리의 응답이다.
이 응답은 아름다운 말마디로 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삶으로 하는 응답이 되어야 한다.
해 본 사람은 안다.
그리고 '감사드린다'
그래서 기도의 궁극적 지향점은 감사와 찬미가 된다.
진짜로 '기도하고' 온 사람은,
성무일도 바치면서 운다.
어쩜 말마디들이 지가 살아온 그대로라서 그렇다.
아니면, 성무일도가 짐이다.
이상하게 양심이 찔리는 말마디들 천지라서 그렇다.
ㅎㅎㅎㅎㅎ
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아니구나, 페이스북은 눈으로 읽는 거니까,
눈 있는 사람은 알아읽어라.
기도하자.
오늘도...
레지오 모임 가야지.
안가면 하느님이 자꾸 가라 할 것 같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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