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요한 5,36)
증언이라는 것은 누군가의 신뢰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필요한 다른 믿을 만한 이의 말입니다. 헌데 하느님에 대해서는 누가 증언할 것입니까? 그분에 대해서 합당하게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분은 스스로에 대해서 증언할 뿐이지요.
그리고 증언이라는 것은 그의 행실에 부족함이 있을 때나 필요한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누군가의 말보다는 그의 삶 자체로 그에 대한 신뢰성을 얻게 됩니다. 그가 실제로 그런 모습을 보일 때에 구태여 그에 대해서 따로 증언을 들을 필요가 없는 셈이지요.
예수님은 당신의 삶 그 자체로 당신의 진실성을 드러내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드러난 그 자체를 올바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했습니다. 물론 그냥 의심만 한 것은 아니지요. 누군가는 시기를 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증오를 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삶은 그들에게는 양심의 가책이었으니까요. 탐욕스런 부자가 보는 앞에서 가난한 이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은 그 부자에게는 고통스런 일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분의 삶 그 자체로, 십자가의 수난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하지요.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답’을 찾아 헤메고 다닙니다. 마치 다른 어디에 또다른 해결책이 있다고 생각을 하지요. 어떤 처세술 책에, 어떤 심리학 저서에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내적 곤경을 해소할 만한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엄청난 착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증언은 이미 드러났고 우리는 그 증언을 듣고 가르침을 받아 살아가면 됩니다. 다른 증언이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수많은 성인 성녀들이 자신들의 삶으로 드러낸 것으로도 부족하다면 더이상 우리에게 합당한 증언은 존재하지 않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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