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하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면 전에는 크게 중요시 되지 않던 일들이 중요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문서에 파묻히는 느낌이다. 더군다나 아직 사무장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 저런 온갖 잡다한 문서들 속에서 헤엄치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목숨은 구한다고 하였다.
잠시 짬을 내어 책을 읽고 싶지만 이 일을 하다보면 저 일이 발목을 잡고 저 일을 하다보면 이 일이 발목을 잡는다. 회계와 서류를 챙기다보니 영혼이 피폐해져가는 느낌이랄까? 볼리비아에서는 오히려 밖으로 열심히 나다니며 몸은 더 피곤했지만 영혼은 맑은 느낌이었는데 여기는 반대로 느껴진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똑같은 일을 해야 했다면 그들은 아마 지쳐 떨어져 나갔을지도 모르겠다. 세리 마태오나 돈주머니를 맡아 쥐던 유다 말고는 다른 제자들은 아마 요구되는 일에 상응하는 학력을 따라가지 못해 애초에 시작부터 자격미달이 아니었을까?
그래도 실망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이 일을 떠맡길 바라셨다. 그럼 이런 복잡다단한 일들 가운데에서도 분명 배울 게 있을 터이다. 어쩌면 나의 성실함과 책임감을 시험하는 것인지도 모르지.
사람은 그 지위에서 누릴 수 있는 권리와 혜택을 원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다가올때는 도망쳐 버리고 만다. 주임 사제가 된다는 것은 지금 내가 떠맡고 있는 정신없음 속에서도 영혼을 돌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투덜대기 시작하려면 모든 것에 투덜댈 수 있다. 반대로 다가오는 도전에 정면으로 부딪히면 그것을 극복하였을 때에 나의 힘은 부쩍 늘어나 있을 것이다. 이제 한국에서 사제로 살아가는 이상 한국에 적응해야 한다. 8년이라는 시간은 가난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가난 속에서 나는 행복했다. 이제는 문명과 발전, 그리고 그 가운데 있는 메마름과 혼탁함을 체험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거쳤을 때에 나는 또다른 깨달음을 얻는 이가 되어 있으리라 본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