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는 레위 지파를 따로 가려내셔서, 주님의 계약 궤를 나르게 하시고, 주님 앞에 서서 당신을 섬기며 당신의 이름으로 축복을 하게 하셨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그 때문에 레위인에게는 동족과 함께 받을 몫도 상속 재산도 없다. 그 대신에 주 너희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주님께서 친히 그들의 상속 재산이 되신다.” (신명 10,8-9)
레위 지파는 사제의 직분을 맡은 지파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하느님의 궤를 메고 다니면서 당신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누리는 것들을 함께 나누어 누릴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다만 기대할 수 있는 보상은 바로 하느님 당신 자신입니다.
오늘날 사제들은 성찬례를 거행하고 나머지 성사들을 집전하면서 하느님을 섬깁니다. 그리고 사제들은 세상 사람들이 헌신하고 추구하는 일상의 노동에서 벗어나고 또 그로 인해서 얻어지는 보상들에서도 제외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느님의 축복을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이론적인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성경이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죄를 짓지 않는 것은 아닌 것처럼 사제에 대한 바람직한 모습이 존재한다고 해서 모두가 그렇게 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저마다의 미흡함과 부족함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지요.
오늘날의 사제들은 한 가지 점에서는 옛 사제들을 고스란히 닮아 있습니다. 바로 일상의 짐에서 벗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처자식도 없고 또 세상 사람들이 안달하듯이 노동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다니는 직장을 잃으면 안달복달하지만 우리는 때가 되면 수시로 임지가 바뀌어 버리고 특별한 잘못이 없는 이상은 절대로 쫓겨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사제들이 세상 사람들에 비해 ‘걱정’에서 자유로운 만큼 우리가 마땅히 신경써야 할 일들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계약 궤를 나르는 일, 즉 하느님의 거룩한 성사를 다루는 일에 신경을 써야 하고, 또 하느님을 섬기고 그분만을 보상으로 기다리는 일입니다.
헌데 그렇지 않을 때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즉, 마땅히 하느님을 섬기고 하느님을 보상으로 기다려야 할 사제들이 엉뚱한 세상의 무언가를 탐내고 기다리기 시작할 때에 바로 엇나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실 문제는 다양하게 드러나지만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제가 하느님을 섬기지 않는 것”
바로 이것에서 모든 사제들의 문제가 일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제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만을 자신의 상급으로 삼을 때에 모든 것은 제 위치를 찾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합니다. 사람들이 사제를 찾는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그가 하느님을 품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제들은 하느님을 찾고 내면에 간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모든 일에서 하느님을 찾기, 그분의 뜻을 찾기에 특화된 사제는 행복합니다. 그는 자신이 맡은 직무를 흔들림 없이 이루어 낼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제들이 하느님만을 유일한 보상으로 삼아 최선을 다해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1코린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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