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마태 10,5-7)
결국에는 다른 민족들에게 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결국 세상 끝까지 전해져야 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제자들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는 것입니다.
성경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연수’라는 것을 갔다오고 나면 일종의 환상에 잔뜩 부풀어 있게 됩니다. 그 연수에서의 충만한 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일을 다 해낼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지요. 꾸르실료를 다녀온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내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들은 머지 않아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적절한 실천의 범위가 요구됩니다. 처음부터 세상으로 뻗어나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처음에는 할 수 있는 영역부터 일을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을 상징하는 이들이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인 것입니다.
교회에는 이미 많은 신자들이 존재했고 지금은 쉬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갈 길을 찾지 못하고 길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집안의 사람들이지요. 하느님에 대해서 배워 알고 그 가르침을 따라 걷기도 했던 형제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다가서서 하늘나라를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꼭 그 일만을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필요하다면 다른 민족들에게도 가게 될 것이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것은 다른 민족들과 사마리아인들이 의미하는 것은 준비되지 않은 밭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갈아엎어져 있고 고랑이 지어져 있어서 씨만 뿌리면 되는 밭과 달리 준비되지 않은 밭에는 때로는 큰 돌도 있고 때로는 뿌리가 깊은 나무도 있어서 그것을 골라내고 솎아내는 데에 엄청난 힘이 든다는 것이지요.
때로 가톨릭 신자가 신자가 아닌 누군가와 결혼을 하겠노라고 나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랑은 모든 것을 극복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하는 결정에 온전히 책임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으로 인해서 참으로 수많은 것들이 변화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느님을 향한 근본적인 방향의 선택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그 둘이 앞으로 부딪히게 될 현실적인 여러 문제들 속에서 과연 어떤 일치점을 찾아낼 수 있을지는 보다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은 처음부터 이방인들에게 보내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쉬운 단계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차츰 역량이 늘어가면서 이방 민족들에게까지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우리 스스로에게 너무 과한 짐을 지우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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