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13,44)
세상에도 투자의 개념이 있습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에 대해서 가진 것을 걸어보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대상이 지닌 가치가 당장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투자한 만큼을 뽑아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망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투자는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좋은 정보이냐, 누가 그 정보를 주었느냐에 따라서 내 안의 신뢰가 형성되는 것이고 그 신뢰도 만큼 투자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진실할 수도 있고 속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안에서의 모든 투자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 자체로 거짓을 말할 수 없는 분이라면 어떨까요? 그에 투자하는 일은 곧 약속된 것을 보장받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늘나라’를 보장하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발견한 이들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지닌 것, 그 가운데에서 가장 최고의 것을 내어 바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생애’이지요.
하지만 모든 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주저하고 또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주어도 아까워하면서 내어주고 또 지극히 일부만을 내어줍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의심’에 대한 결과로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진 것을 다 팔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밭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 일부만을 사려고 들다가는 엉뚱한 곳만 잔뜩 사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표현 자체를 두려워합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야 한다는 말에 자신이 이미 ‘지니고 있다고 믿는 것’을 상실한다는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진 것을 다 판다는 말이 우리더러 신학교를 들어 가라거나 수녀원에 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건 가진 것을 다 팔고 난 뒤에 뒤따르는 여러가지 부수적인 결과 가운데 지극히 일부분일 뿐입니다. 만일 모든 이가 신학교를 가야만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라면 구원은 지극히 제한된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가진 것을 다 팔라는 말은 우리의 의지를 온전히 봉헌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의지의 봉헌은 비단 외적인 행위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보다 내밀한 영역이며 의지와 결심의 영역입니다.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차 한 잔을 마셔도, 케잌 한 조각을 먹어도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삶의 변화 속에서 우리는 보다 더 하느님에게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게 되고, 하느님에게 어긋나는 것을 자연스럽게 멀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외적인 것은 내적인 것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소중히 여길 때에 우리는 가진 것을 다 팔게 될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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