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태 10,8)
거저 받은 것은 거저 주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의 일들은 ‘거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제들은 그것을 돈을 주고 구입한 것이 아니라 거저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이어 이런 표현을 합니다.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마태 10,9)
사도들에게 그 어떤 재화나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들고 다니지 말라고 하면서 그러한 것들에 관해서는 일하는 사람이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십니다.
어찌보면 서로 상충되는 두 구절인 것 같아 보입니다. 한 측은 거저 주라고 하고 다른 한 측은 일했으니 먹을 것을 받으라고 하니 말이지요. 그래서 이를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도들, 오늘날의 주교와 사제들이 실천하는 모든 성사의 일들은 오직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제들은 그 은총을 하느님에게서 거저 받아서 집행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 그 은총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는 데에 있어서 무언가 상응하는 것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다른 한 편, 사제도 하나의 인간입니다. 그래서 그가 생활하는 데에 필요한 요소들이 생겨나게 마련이지요. 그도 입고 먹고 잘 곳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먹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먹을 것은 일하는 곳에서 충당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먹을 것을 벗어난 범주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운행하기에 충분한 차를 두고 최고급, 최신 모델을 뽑겠다고 나서는 것은 먹을 것을 벗어난 범주입니다. 신자들은 그러한 것을 챙겨줄 의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성당에서는 ‘교무금’, ‘봉헌금’, ’미사 예물’이라는 것을 받습니다. 교무금과 매 주일 봉헌금은 교구와 본당의 운영을 돕고 교회의 녹을 받아 먹고 사는 이들의 생활비와 활동비를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는 바로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수입이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신자로서 이 일에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반면 ‘미사예물’이라는 것은 사제가 미사를 드리면서 특별한 지향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치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것으로 제가 속한 교구에는 이 역시 모든 성당에서 수렴되어 교구로 보내져서 사제의 복지를 위해서 쓰이게 됩니다. 이 미사예물의 경우는 무언가 특별히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통상적인 관습에 따른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어느 장례식장이나 결혼식에 갈 때에 돈을 준비하는 것처럼 교회 안에 통상적으로 정해진 관습의 범위 대로 내는 것이지요.
하지만 만일 정말 가난한 이가 무언가를 위해서 지향을 넣고 미사를 드리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제는 마땅히 그들을 위해서 지향을 두고 기도를 드려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가난한 이가 기다리는 은총은 바로 사제가 거저 받은 것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사제의 수고에 감사하면서 건네는 자발적인 봉헌은 감사하면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행여 그러한 일이 가난한 이에게 장벽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사제의 모든 성사적 행위는 돈을 받고 파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증여이며 봉사의 행위가 되어야 합니다.
거룩한 행위를 돈벌이로 전락시키는 이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은 원한다면 누구든지 교회의 거룩한 성사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그 어떤 장벽도 있어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은 말씀이 필요하면 언제라도 들을 수 있어야 하고 하느님의 은총의 손길이 필요하면 언제라도 다가서서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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