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성경에서 알고 있는 모세는 그 이름만으로도 엄청난 존재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는 사실 파란만장한 인생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유대인으로서는 가장 고귀한 집안의 출신이었습니다. 즉, 사제 집안인 레위 지파 출신이었지요.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지금 자신이 처한 세상의 현실 안에서 그는 죽음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노예들의 자식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가 파라오의 딸에게 발탁되어 공주의 양아들이 됩니다. 그로 인해서 그의 신분은 정반대로 변하게 되지요.
하지만 그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통해서 자신의 동족에게 멸시를 당하고 더불어 파라오에게 죽음의 위협을 겪는 신세가 됩니다.
이는 곧 우리의 현실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들이지요. 하지만 세상 안에서 우리는 가장 약한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언제라도 세상의 위협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요.
그런 우리가 세상 안에서 나름 살 길을 얻게 됩니다. 즉, 우리는 우리에게 모든 권한이 주어져 있다고 생각하고 우리의 역량을 마구 펼치지요. 인간이 성장하면서 자연스레 겪게 되는 현상입니다.
그러다가 일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그릇된 자유의 사용으로 ‘죄’를 저지르게 되고 하느님의 자녀의 지위도 세상 안에서의 지위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죄’라는 것은 두 가지 면모를 동시에 상실하게 합니다. 인간의 죄는 무엇보다도 그의 내면의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빛을 꺼뜨리게 됩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서 하느님을 상실하게 되지요. 그리고 하느님을 찾기는 커녕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게 됩니다.
나아가 이 죄는 사회적인 면모도 지니고 있어서 인간 사이의 관계를 파괴하게 됩니다. 죄에 물들어가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서서히 무너지게 됩니다.
모세는 목숨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바로 그의 그런 천덕꾸러기 신세에서 온전히 당신의 은총으로 그를 민족의 인도자로 승극시켜 주시지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모든 힘이 빠지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하느님은 우리를 당신의 도구로 쓰실 수 있게 됩니다. 가장 약한 것 안에서 당신의 은총이 가장 잘 드러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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