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뵐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불러라
우리에게 주어진 생의 시간을 살면서 우리는 흔히 이 시간이 계속될 것으로 착각합니다. 하지만 계절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듯이 우리의 삶에도 여러가지 가능성과 기회들이 다가오는 순간이 있고 그것들이 물러나는 시간이 있습니다. 가을에 수확을 해야 먹을만한 열매를 얻습니다. 섣불리 설익은 과일을 여름에 따거나 아니면 아예 다 물러터져 버린 다음에 따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영혼에도 수확의 시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에 올바른 수확을 이루어 내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돈 벌 기회를 잃었다는 것을 알면 너무너무 안타까워 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영적인 지혜를 얻을 기회를 잃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아니 아예 감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곁에 두고는 늘 이렇게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읽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집어 읽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내 주변에 당장 먹을 수 있는 좋은 음식이 있는데 '언젠가 다른 기회에 저걸 먹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떻게든 그 음식을 좀 더 맛있게 먹으려고 애를 씁니다. 이로써 사람의 욕구가 어디에 놓여 있으며 무엇을 추구하는지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자신에게 너무나도 가까이 다가온 기회를 놓쳐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군가는 거룩한 부르심을 내던져 버리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구원의 기회를 놓치기도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년 다가가 주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구원의 기회는 단 한 번이었습니다. 우리는 매주 미사를 드리고, 아니 매일 미사를 드리면서 예수님을 늘 만난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영적인 기회라는 것은 미사만 드린다고 다가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기회, 자신의 어둠에서 해방되어 빛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는 자주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곁에 가까이 다가왔을 때에 붙들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전능을 바탕으로 우리의 삶의 시기 가운데 그 적합한 때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우리에게 손을 내미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 부르심에 올바로 응답하는 것은 아닙니다.
훗날 우리가 하느님과 마주하게 되면 우리 생의 숨겨져 있던 비밀들을 모두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순간에 두 가지 반응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너무나 사소한 곳에 숨어있던 구원의 기회를 너무 하찮게 여겨서 그것을 내던져 버린 이와, 반대로 아무것도 아닌 일을 성실하게 수행했다는 이유로 찬란한 영광을 받는 이 두 종류입니다. 부자와 나자로의 비유를 떠올려 보면 됩니다. 부자는 자신의 문간에서 작은 동정을 바라는 나자로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나자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천국의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반면 부자는 건너올 수 없는 곳에서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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