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내면에서 움직이는 힘을 ‘의지’라고 합니다. 이 의지는 여러가지 것에 자극을 받게 됩니다. 가장 기초적으로는 욕구에 자극을 받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아무것도 없어 방구석에 누워 있다가도 배가 고파지면 슬며시 일어나 냉장고를 뒤적거리는 우리들입니다. 이 욕구는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우리와 밀접히 연관괴어있는 강력한 자극입니다. 세상 모든 동물들은 이 욕구에 기초해 살아가고 나아가 인간도 ‘욕구’만을 뒤쫓아살아가면 동물과 진배없는 셈입니다.
본능적 욕구 외에도 우리를 자극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인간의 보다 고상한 활동들입니다.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자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인정받고 싶기도 하고 무언가 위대한 업적을 남기기도 싶어합니다. 그래서 움직입니다. 때로 본당에서도 발견되는 욕구입니다. 본당은 확실히 기초적인 욕구를 채우러 오는곳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계 때문에 그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나올 수 있습니다. 본당은 하나의인간 사회이며 문화의 장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단계의 욕구는 본능적 본성보다는 고상하기는 하지만 역시 동물보다 고차원적인 인간의 영역입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겠습니다. 인간은 ‘영혼‘을 지닌 존재로서 영적 자극을 받습니다. 여기에 작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악령입니다. 영은 영에 자극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다툼을 하고 나서 그에게 적대감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동물들에게서도 일어날 만한 일입니다. 헌데 그 복수를 심화해서 그를난도질을 하고 그의 가족까지 모조리 죽여 버리겠다고 하는 것은 단순한 적대감을 넘어선 일이 됩니다. 그것은 악마적인 일인 셈입니다.
악령은 알게 모르게 인간사에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과학에 무지하던 시절이라 모든 것을 지나치게 영적으로만 해석하려 해서 문제였지만 오늘날에는 과학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서 자신의 실체를 가리고 있는 더러운 영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인간의 선과 악의 문제를 단순히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이라는 장막으로 가리워서 마치 그 누구도 자신의 행동에 근본적인 탓이 없다는 듯이 풀어내려는 많은시도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악령은 엄연히 존재하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인간의 영에 작용하여 그에게 악한 의도를 불러 일으키는 것입니다. 거룩한 것을 혐오하게 만들고 고상한 것을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고결한 삶을 어리석은 삶이라고 가르치면서 그렇게 살면 재미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인간을 파멸로 이끌어가는 쾌락을 좋은 것인양 강조하고 그것을 마음껏 이루어줄 수 있는 돈을 사랑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모든 고결한 종교적 활동을 멈추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바로 이런 악한 영의 활동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구원된 이들, 바로 복음의 여인들은 그 해방에 대한 우러나오는 감사로 기꺼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기쁘게바쳐 예수의 일행을 돕습니다. 그런 그들을 자극하는 동기는 기쁨과 감사이며 무엇보다도 거룩하신 분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참으로 고결한 내적 의지가 됩니다. 그러나 악에 물들어 있는 자들은 이를 절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