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고발당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금 세상 안에서 고발당하고 있지만 그 고발은 무의미한 것이며 오직 하느님께서 벌하시는 것만이 진정한 고발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순교자들은 모두 세상 권력 앞에 고발당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세상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믿는 바를 내던지고 왕의 권한 앞에 무릎을 꿇지 않아서 고발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일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벌어집니다. 세상은 믿는 이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그 믿는 바를 버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착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믿는 바'라고 하는 이 말의 의미는 외적인 형태에 존재하지 않고 내면의 영혼의 태도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내적으로는 신앙을 우습게 여기고 하느님에 대해서 의심하면서도 외적인 신앙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인간적으로 도움이 되기에 그렇게 하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신뢰하는 시늉을 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는 실질적인 힘들을 더 믿는 이들입니다. 성경의 표현을 따르면 자신의 배를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돈의 힘을 믿지만 하느님이 의인을 돌보아 주신다는 사실을 믿지는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 결정적 증거는 자신의 세속적 삶의 영역이 침해당할 때에 그들은 과감하게 신앙을 내던진다는 데에 있습니다.
반면 영혼의 진실함으로 믿음을 고수하는 사람은 이미 세상을 내려 놓은 이들입니다. 그들은 세상 안에서 살아가고 세상을 이용하지만 전혀 다른 현실을 실재한다고 믿고 살아갑니다. 그들은 세상의 힘과 권력이 하느님 앞에 휴지조각과 같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그런 이들의 위협이 전혀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현세에서 실제로 고발당하고 있지만 그 고발에서 그 어떤 실질적인 위협도 느끼지 않는 이들이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이 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현세 안에서 단죄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아왔습니다. 오히려 더 세속적이고 하느님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는 신앙인이 그 현실적 영리한 처신으로 사람들에게 칭송을 듣는 모습을 여러번 보아 왔습니다. 이는 우리가 일상 안에서도 마주할 수 있는 모습입니다. 실제 일을 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부하 직원이 다 해 놓은 일을 마치 자기가 한 일인 양 영광을 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그는 상사의 이쁨을 받지만 사실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는 그저 허울좋은 말뿐인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마찬가지로 하느님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단죄할 수 있어도 실제로는 귀한 보석과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의 영혼이 귀한 보석 같기에 타락한 영혼을 지닌 이들은 그들을 더욱 혐오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술꾼들이 모인 자리에서 술을 절제하자고 가르치는 사람이 손가락질 당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고 단죄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랑에서 절대로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현세적 목숨을 빼앗아갈 정도로 악은 타락할 수 있고 그 일을 자행할 수 있지만 그들은 영원 안에서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고 현세에서 한껏 악을 실행하던 그들은 영원 안에서 수치를 겪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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