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사회는 분노를 조장시키고 그것을 꾸준히 유지하도록 하면서 그 일이 정당한 것인양 사람들을 설득합니다. 정의와 분노를 교묘히 연결시켜 정의롭기 위해서는 항상 분노해야 한다는 식으로 사람을 이끌어 갑니다.
참된 정의는 하느님의 것이고 참된 분노도 하느님의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세상 사람들과 달리 모든 것을 그 깊은 속내까지 바로보실 수 있기에 정의로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그 단면들 뿐이라서 우리는 보여지는 것에 따라서 분노하기도 하고 어마어마하게 부당한 일을 눈 앞에 두고도 아무렇지 않기도 합니다. 가령 우리 나라에서 사람이 죽으면 우리는 정의를 추구하면서 그 일을 끝까지 파고들겠노라고 하지만 정작 다른 나라에서 수천 수만이 죽어도 우리는 그만한 열성을 내지는 않습니다. 또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에는 흥분하지만 거대한 구조 속에서 노예화되어가는 약자에게는 그것을 느끼지조차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우리에게 보여지고 비춰지는 것을 대상으로 정의를 추구하고 그에 상응하는 분노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힘 있는 자들은 이를 잘 사용할 줄 알아서 우리에게 선별적인 것을 비춰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의로움으로 분노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의 분노는 아무리 올바르고자 애를 써도 불균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진정으로 정의로울 수 있고 올바른 분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을 들어높여야 합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오직 하느님만이 그 올바른 정의와 분노를 실행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줍니다.
“종말을 생각하고 적개심을 버려라. 파멸과 죽음을 생각하고 계명에 충실하여라. 계명을 기억하고 이웃에게 분노하지 마라.”
우리가 우리의 분노를 하느님께 맡겨 드릴 때에 그분께서 영원 안에서 일을 정돈하십니다. 결국 악인은 그 결과를 맞이하게 되고 의인은 그 상응하는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분노에 사로잡혀 우리의 영혼을 죄악에 저당잡히지 말고 의로운 하느님의 분노에 의탁하는 것이 낫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계약을 기억하고 잘못을 눈감아 주어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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