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을 흔히 '나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악은 나쁜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무엇이 나쁜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몸을 힘들게 하는 건 나쁜 것일까요?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헬스장은 없어져야 마땅합니다. 거기만큼 몸을 힘들게 하고 있는 곳은 없으니까요. 그건 말이 안되는 이야기이지요. 그래서 단순히 몸을 힘들게 한다고 나쁜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장기적으로 보아 몸을 더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 지금의 잠깐의 수고와 고통을 견디는 것은 전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때그때 몸이 욕구하는 대로 다 들어주면서 몸을 비대하게 만들고 본래의 활동조차 할 수 없는 몸으로 방치하는 것이 나쁜 일입니다.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것은 모두 나쁜 것일까요? 사실 우리는 많은 것에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우리가 원치 않는 것이면 뭐든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자극하게 됩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상황들은 우리 안에서 좋은 덕을 형성시키는 재료로 쓰이게 됩니다. 스트레스를 가하는 상황을 통해서 우리는 인내를 훈련하게 되고 겸손을 배우기도 하고 사랑을 실천할 힘을 얻는 것이지요. 결국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모든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해 나가는가 하는 우리 내면의 선택에서 선과 악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마약을 하고 있는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지 않겠다고 그를 방치하는 것이 과연 선일까요? 그것은 무책임함이고 오히려 그 무관심이 나쁜 것입니다. 하느님이 예수님을 공생활을 시작하면서 광야로 보내 사탄에게 시달리게 한 것을 두고 우리는 악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상인들을 내쫓은 것을 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다윗이 죄를 저질러서 그에게 잘못을 인지하고 뉘우치게 하기 위해서 나탄 예언자를 보내 듣기 싫은 소리를 듣게 한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부드럽고 아름다운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사랑은 온유하고 친절하고 참을성이 많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상대에 따라서 다른 형태로 드러납니다. 물에 빠지는 아이는 손길이 좀 거칠어도 강한 팔로 잡아 끌어서 죽음을 면하게 하기도 해야 하고, 악습에 빠져 있는 이라면 때로는 강하게 꾸짖어서 그가 스스로 벌이고 있는 어둠의 행실을 깨닫게 하기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랑을 서로에게 빚지고 있습니다. 사랑은 그저 상대를 기분좋게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올바른 방향을 물색하고 힘들어도 서로를 도와주며 그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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