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어딘가에 갇혀 있는 사람입니다. 일단 우리는 '지구'라는 곳에 갇혀 있습니다. 물론 돈 많은 사람들은 우주 여행을 떠나는 시대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지구 말고는 다른 행성에 가 본 사람은 없습니다. 사실 우리 대부분은 지구라는 곳에 갇혀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우리는 어딘가에 갇혀 있습니다. 제가 일하던 남미의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동네를 떠나는 경험도 잘 없습니다. 바다를 보는 건 꿈도 꾸지 못하는 일이구요. 그리고 그런 우리들 가운데 누군가는 '감옥'이라는 곳에 갇히기도 합니다. 비로소 우리가 '갇힌다'는 느낌을 본격적으로 느끼게 되는 영역입니다. 하지만 넓게 바라보면 우리 모두 저마다의 범위가 다를 뿐, 갇혀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다른 의미로 갇혀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책무에 갇히는 것이지요. 어떤 종류의 의무감, 사명, 소명에 갇히는 것입니다. 집안의 가장이 된다는 것은 가족 구성원들을 향한 책무에 갇힌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남편의 아내로 자녀들의 어머니로 귀속된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우리는 책임과 의무에 의해서 갇히기도 합니다. 또 정반대로 자신에게 엄연히 그 책무와 의무가 있음에도 제 멋대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아가 죄악에 갇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죄는 그 죄를 저지르는 사람을 종속시킵니다. 완전히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죄는 우리를 더 큰 죄로 이끄는 것이 통상적입니다. 거짓말을 한 번 하는 게 어려울 뿐 거짓에 익숙해진 사람은 향후로는 더 큰 죄를 짓는데 거짓을 능수능란하게 씁니다. 그리고 그 거짓을 통해서 누군가를 파괴하고 무너뜨리는 데에 주저함이 없게 됩니다. 그렇게 사람은 더욱 큰 죄악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게 되고 그 죄악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을 올바로 이해하고 스스로 수인, 즉 갇힌 사람이 되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서에서 '주님 안에서 수인이 된 나'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실제로 수인이기도 하였습니다. 인생의 말년을 감옥에 갇혀서 생활했습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처지가 무엇에서 기인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주님을 위해서 스스로 수인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비밀은 여기에 있습니다. 스스로 갇히는 사람이 가장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갇히는 범위가 크면 클수록 실제로는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어항에 고기가 갇혀 있다고 볼 수는 있어도 바다에 고기가 갇혀 있다고 한들 의미없는 말입니다. 그 고기가 바다 말고 더 큰 어딘가에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 안에 스스로를 구속시키는 사람은 가장 넓은 곳에 자신을 가두는 사람으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 됩니다.
흔히 우리는 자유를 내가 욕구하는 모든 것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자유는 너무나 쉽게 우리를 구속시킵니다. 반대로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우리의 의지를 내어 맡길 때에 그 구속의 행위는 가장 자유로운 결정이 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이 보기에 봉쇄 수도원의 수도자는 철창 안에 갇힌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 갇혀 있는 사람은 그 철창 너머에 있는 우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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