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무엇이 하느님의 뜻입니까?
의외로 간단합니다. 우리가 찾는 하느님의 뜻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의도를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은 영원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을 의미합니다.
무엇이 선한 것일까요?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 선한 것이 됩니다. 즉,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이면 선한 것이고 그 반대되는 것이면 아무리 인간적으로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악한 것이 됩니다. 돈을 무진장 많이 벌면 인간적으로는 좋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은 그 여정을 향해 달려갑니다. 하지만 그 수많은 금전이 우리의 마음을 도리어 더럽히고 우리에게 악습을 형성해서 우리를 악의 길로 이끌어 간다면 그것은 선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악한 것이 됩니다. 심지어는 종교적으로도 비슷한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전례 행위에 참여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서서히 형성되어가는 내적 교만이 도리어 자신을 하느님에게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게 하고 다가오는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게 한다면 그것은 도리어 헛된 열심이 되고 바리사이적 열성이 되고 맙니다. 베드로도 스승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그분의 수난의 여정을 가로막고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일갈했다가 예수님께 '사탄아 물러가라'는 소리를 듣고야 말았습니다.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까요?
하느님은 세상의 모든 것을 '보시니 좋았다'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세상의 창조된 모든 것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성도 좋은 것이고 마약도 그 합당한 목적에 사용될 때에는 좋은 것입니다. 병원에서 극도의 고통에 시달리는 이에게는 마약성 진통제를 통해서 잠깐의 안식을 주기도 합니다. 치과에 갔는데 통증을 완하하는 약물 없이 치료를 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 어마어마한 고통을 참아낼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입니다. 원래 창조된 모든 것은 그 목적대로라면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악이 그 좋은 것들 안에 그릇된 방향을 불어넣게 되고 그렇게 드러나는 것은 하느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됩니다. 자연은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지만 인간이 자신의 탐욕으로 더럽혀 놓은 자연은 하느님 보시기에 거북한 것이 됩니다. 나아가 우리가 하는 모든 활동들도 하느님 앞에는 마음에 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상 활동의 기초는 사실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활동입니다. 먹고 자고 일하고 하는 모든 것은 전혀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같은 원칙이 적용됩니다. 인간의 그릇된 의지가 그 모든 것에 어둠을 불어넣게 되면 평범하던 모든 활동이 타락한 활동으로 변하게 됩니다.
무엇이 완전한 것일까요?
사실 이 주제는 조금 어렵습니다. 하지만 사실 마태오 복음에 서술되어 있습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구절의 앞부분에 등장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이것이 완전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느님께서 실천하시는 일입니다. 세상의 원리원칙은 명확합니다. 그것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황금률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는 '원수 사랑'이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그리고 박해하는 이들을 위한 기도를 가르쳐줍니다. 물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상대가 나를 칼로 매번 찌르는데 그 모든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방식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닙니다. 어머니의 따뜻함도 사랑이지만 아버지의 엄함도 사랑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주어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적 사랑도 사랑이지만 훗날 이루어질 하느님의 엄정한 심판도 그분의 사랑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박해하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이 훗날 하느님을 알게 되고 그분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원수를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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