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사도는 일 하는 방식에 대한 서술을 합니다. 그것은 영적인 방식과 세속적인 방식으로 나뉘는데 그 중 하나는 다음과 같습니다. 바로 신앙 안에서 이루는 일로서 꽤나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영적인 방식 가운데 첫째는 하나의 몸이라는 개념입니다.
“뜻을 같이하고 같은 사랑을 지니고 같은 마음 같은 생각을 이루어”라고 표현되는 부분입니다. 사실 이것처럼 훌륭하게 일하는 방식은 세상에 따로 없을 것입니다. 최근들어 배송 회사들이 로봇을 두고 일을 합니다. 그러면 저마다 계획된 범위 안에서 움직이고 가장 효율적으로 일을 합니다. 같은 프로그램 안에서 움직이기에 서로 부딪힐 일도 없고 마치 하나의 몸처럼 움직이게 됩니다. 반면 인간 사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같은 집단 안에 속해 있으면서도 서로 뜻하는 바가 다릅니다. 그래서 같은 가족 안에서도 부부 사이에서도 곧잘 충돌이 일어납니다.
영적인 방식의 두번째는 ‘그리스도’와 ‘성령’의 도움입니다. 아무리 인간적으로 하나로 일치하고자 해도 분명히 결함은 존재합니다. 우리 가운데에는 완벽한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위로부터’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은총’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은총은 바오로 사도에 의하면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격려와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친교로 나누어집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내가 아픈들 예수님만큼 아플 것이며 내가 억울한들 예수님만큼 억울하겠는가?”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받는 격려입니다. 그분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큰 힘이 됩니다. 특히 우리가 받는 고통의 의미를 늘 되새겨 줍니다.
성령 안에서 친교는 거룩한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친밀함을 의미합니다. 악인들도 서로 친합니다. 서로의 이기적 목적이 맞아 떨어지면 그들은 서로 친하게 지냅니다. 필요하면 술도 함께 마시고 운동도 같이 하면서 친교를 나눕니다. 그러다가 이득이 틀어지면 그때부터 원수가 되곤 합니다. 하지만 거룩한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친교는 악인들의 친교에 비할 게 아닙니다. 성령 안에서 친교를 이룬다는 것은 같은 내면의 상태를 공유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뜻은 거룩한 뜻입니다. 여기에는 그 어떤 그릇된 욕망이나 거짓됨, 이기적인 목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성령은 영원 안에서 진리이기에 우리의 친교는 영원한 친교가 됩니다.
반면, 세속적인 방식의 일에 대해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서술합니다. 즉, 이기심과 허영심으로 하는 일이 그것입니다. 인간은 지극히 이기적인 목적, 즉 자신에게 이득이 되기 위한 목적으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는 언뜻 남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시늉을 하지만 그 모든 행동 역시도 철저히 자신을 위해서 계산된 행동이 됩니다.
또한 ‘허영’때문에도 일을 합니다. 자신을 과시하고 사람들의 찬사와 칭찬이라는 정신적 만족감을 얻기 위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성경에서 ‘받을 상을 다 받는 행동’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 지상에서 받을 상을 다 받기에 영원에서 받을 것이 전혀 없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정말 많은 것을 이루어 내면서도 자신이 한 것은 하느님 앞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자신이 한 최소한의 것을 최대한으로 부풀려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는 듯이 뻥튀기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저런 모든 분별은 하느님 앞에 맡겨야 합니다. 결국 의인은 의인이 받는 상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식별은 우리가 겉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에서 좀처럼 드러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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