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요한 1,29)
죄에 대한 이해를 굳혔으니 이제는 죄를 없애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합시다.
죄라는 것은 앞서 글에서 말씀드린 대로 어떤 행위 그 자체의 결과보다는 그 내적 방향성이 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없애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특정한 행위를 한다고 죄가 없어진다기 보다는 내적으로 방향전환을 이룰 때에 죄가 없어지게 됩니다.
진흙탕에 들어가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를 꺼내서 옷을 씻긴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흙을 좋아하는 아이의 내적인 면모를 변화시켜서 깨끗한 것을 좋아하게 해야 진정으로 그 아이가 깨끗해지는 것이지요. 그러기 전에는 아무리 옷을 씻겨도 다시 진흙탕에 빠져 버리고 말게 될 것입니다.
아이의 옷을 한 번 세탁하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에 속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더러움을 스스로 분별하고 깨끗함을 선호하게 하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 오래 걸리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아이에게 꾸준히 깨끗한 것을 드러내고 그것을 사랑할 때까지 몇번이고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의 죄를 없애는 어린양인 이유는 그분이 당신의 삶 자체로 하느님이라는 빛을 드러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의 빛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빛을 올바로 체험한 이면 누구나 하느님을 알게 되기에 예수님이야말로 진정으로 세상의 죄를 없애는 분이 되시는 것이지요.
아직은 설명이 부족한 느낌입니다. 사람들은 어쩌면 이를 들어도 무슨 말인지 올바로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자녀에게 신앙을 전해주고 싶은 어머리를 떠올려 봅시다. 헌데 이 어머니는 당장 자녀들이 성당에 가지 않는 것이 불만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을 볼때마다 안쓰러운 표정, 일그러지고 슬퍼하는 표정으로 성당에 가라고 합니다. 헌데 그러면 그럴수록 자녀들은 그런 어머니가 더욱 싫어지고 어머니를 기피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사실 문제는 자녀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머니에게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이 자녀들에게 무엇을 전하고 있는 중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로서는 자녀들에게 신앙을 향하는 길을 전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짜증과 불안과 걱정을 전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자녀들로서는 그런 부정적이고 온통 짜증만 전하는 어머니가 당연히 싫을 수 밖에요.
자녀들에게 신앙을 전한다는 것은 자녀들이 빠른 시간 내에 성당이라는 물리적 공간안에 몸담게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신앙의 전파는 보다 장기적으로 이루어지고 한 사람이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는가 빛 가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아주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이루어지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진정으로 신앙을 전하고 싶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스스로 그 신앙을 살아야 합니다. 참된 신앙을 사는 이는 그 어떤 것도 걱정하지 않고 하느님에게 모든 것을 의탁할 수 있습니다. 이 어머니는 그 누구보다도 사랑에 가득한 사람으로 변하게 될 것이며 여유롭고 위트 있고 친절하고 온유하며 지혜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그런 어머니를 통해서 자연스레 신앙의 본질에 접근하게 되는 것이지요.
죄를 없애는 하느님의 어린양의 역할은 바로 그러한 것이었습니다. 어린양이신 예수님은 당신의 삶 자체로 하느님을 드러내셨지요. 빛에 대해서 신학적으로 지성적으로 설명한 것이 아니라 빛을 사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을 본 이는 자동으로 아버지를 보게 되는 것이지요. 선을 보게 된 이는 자연히 어둠을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이 빛, 즉 선과 진리와 사랑과 정의의 빛은 수동적인 빛이 아니라 능동적인 빛입니다. 이 빛은 어둠을 마주하면 수동적으로 멈춰 서서 어둠이 빛을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어둠을 향해서 나아가 빛 빛으로 감싸안는 빛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지요. 그분은 얼마든지 자신의 빛을 수호하면서 피해 다닐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뱉는 침을 받아내셨고 모욕을 참아 견디셨지요. 그분은 빛으로 어둠을 이기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올바른 가치를 잘 알지 못합니다. 그분을 알아보는 이는 그분의 빛을 보게 되고 그 빛은 그 빛을 바라보는 이를 변화시키게 됩니다. 예수님을 올바로 아는 이는 이미 그분의 빛 안에 머무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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