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군가의 말을 들으면서 그 진실성을 분별합니다. 언제나 충실하게 살아가는 이가 하는 말은 얼마든지 믿을 수 있게 마련이고 반대로 거짓말쟁이나 권위가 없는 이가 하는 말은 믿어서는 안되지요. 우리는 통상적으로 누군가의 말을 듣기 이전에 이미 먼저 그 진실성의 여부에 중점을 두고 그것을 바탕으로 상대의 말을 듣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실성을 두는 근거는 과연 무엇일까요? 한 사람의 진실성을 도대체 무엇으로 분별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마음이나 생각을 읽어낼 수 없기 때문에 일단은 그의 외모를 봅니다. 그리고 외모가 말끔하고 준수한 사람은 어쩐지 좀 더 신뢰가 가는 것 같고 반대로 외모가 후줄근하고 볼품없는 사람은 좀처럼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한때 홍콩 무술 영화가 한창일 때, 무협의 주인공은 늘 스승을 찾아 다니다가 어떤 이상한 할아버지 한 사람을 만나고 그를 무시합니다. 헌데 나중에 보면 그가 엄청난 내공을 지닌 고수라는 것을 알게 되지요.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외모가 깔끔하고 준수해서 믿고 이런 저런 것들을 맡겼는데 알고 보니 엄청난 사기꾼이라는 것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이는 우리가 진실성의 근본을 찾아야 마땅한 자리에서 그것을 찾지 않고 진실성과는 상관 없는 곳에서 그것을 찾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오류입니다. 진실함은 ‘외모’나 ‘학벌’, 그가 지닌 외적 ‘권력’이나 ‘명예’에서 비롯하지 않습니다. 진실함은 오직 그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삶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려는 목적으로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끝에 박사 학위를 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박사학위가 그의 인성을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시골 무식한 촌로보다도 더 형편없는 인성을 지녔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교만함과 독선과 아집이 그의 눈을 가리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누가 자신의 ‘경력’을 내세우고 다가오면 그에게 얼른 다가가게 될 것입니다. 그건 사람들이 바로 거기에 신뢰를 두기 때문입니다. 어딜가든지 ‘경력’을 제시하도록 요구 받습니다. 그 경력이 그의 실력을 드러낸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진실한 분은 누구일까요? 누구에게 가장 신뢰를 둘 수 있을까요? 그것은 진리 그 자체이신 분이십니다. 절대로 거짓을 말할 수 없는 분, 진리 그 자체이신 분의 외아들이신 분이시지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무시 당했으며 무시 당하고 있고 또 무시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그분을 믿고 따르는 모든 이들도 함께 무시당할 것입니다. 세상은 그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행실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어두운 삶으로 빛을 가로막기 때문에 빛이 다가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를 버릴 수 없습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아는 이상 그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이에게 시련이 다가올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그 진리를 버리고 거짓을 다시 사랑하게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달릴 길을 다 달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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