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은 그것을 당기는 사람에게 전해집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처럼 은총도 그에 목마른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아무리 위중하고 급한 일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중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에게 ‘절박함’이 없으면 은총은 다가가지 않습니다. 은총은 그것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에게 물 흐르듯이 흘러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은총을 전하는 수단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성사’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웅장하고 성대한 전례에 참례하면 그로 인해서 더 많은 은총을 받는다고 생각을 합니다. 틀린 생각은 아닙니다. 많은 신자들이 함께 모여 거룩하게 거행하는 전례 안에는 분명 더 많은 은총이 넘쳐 흐르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착각하는 것이 있으니 그저 그 곁에 머물러 있기만 해도 절로 그 은총이 나에게 흘러 들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은총은 그 전례에 참여한 이들 가운데 가장 절박한 이에게 흘러 들어갑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예수님을 밀치고 북적대고 그분의 제단에 다가가 제대에 손을 대더라도 은총은 그 가운데 가장 겸손되이 머무르는 자에게 돌아가고 말 것입니다.
주교님과 친하다고 은총이 흘러오지는 않으며, 어느 신심 단체에 오래 참여했다고 신심이 흘러 넘치지 않습니다. 비록 단 한 번도 주교님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겸손되이 하느님을 모시고 사는 시골 노파에게 은총이 더 많을 것이고, 글자도 읽지 못해 신심 단체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이지만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마음에 품고 이웃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이에게 은총이 더 많을 것입니다.
이 단순하고 소박한 진리를 사람들은 왜 모를까요? 왜 아직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리저리 밀쳐대면서 그 가운데 은총을 받게 된 하혈하는 여인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여전히 그들의 눈이 명예와 탐욕과 이기심에 가리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만 할 뿐 실제로는 예수님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그날에 예수님에게 ‘주님 저희가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지 않았습니까?’라고 하겠지만 주님은 ‘나는 너희를 모른다. 내게서 물러가라 악을 일삼는 자들아.’하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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