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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별



남자들더러 ‘자기야, 오늘 내 모습 바뀐 거 어때?’라고 묻는 것은 사실 별 의미 없는 것입니다. 팔이 하나 떨어져 나가거나 갑자기 얼굴에 멍이 들거나 하지 않는 이상은 별다른 차이를 찾아내지 못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남성들은 소소한 변화에 무심하기 때문이지요.

사람은 저마다 관심을 두는 것이 크게 보이게 마련입니다. 메니큐어를 칠하는 사람은 다른 이의 손톱에 관심이 갈 것이고 보통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여러가지 면모들이 보일 것입니다. 손톱 관리 상태며 그 길이, 그리고 평소에 칠하고 다니는 메니큐어의 종류와 꾸미는 정도가 금방 눈에 들어오겠지요.

이처럼 인간의 내면도 드러나게 마련이고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면 그것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표정과 행동은 의식적으로 꾸밀 수는 있지만 늘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우울한 사람이 밝은 표정을 잠시 지어보일 수는 있지만 그의 삶 전체를 밝은 것으로 꾸밀 수는 없는 노릇이고, 반대로 마음이 기쁜 사람이 장례식장에 가서 잠시 그들의 마음에 동참할 수는 있겠지만 평소에 지닌 활달함을 감출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 사람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의 내면이 보이게 됩니다. 그가 고통을 겪고 있는지, 아니면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는지. 뭐가 배배 꼬인 사람인지, 아니면 맑은 사람인지가 드러나지요. 그리고 마치 모니터의 해상도가 높아지면 더 세세한 부분이 보이는 것처럼 영혼을 식별하는 해상도가 높아지면 한 사람의 내면도 더 식별할 수 있게 됩니다. 즉, 그가 인내가 있는 사람인지, 겸손한 사람인지, 온유한 사람인지, 아니면 반대로 그가 참을성이 없는 사람인지, 교만한 사람인지, 무지막지한 사람인지 등등이 잘 드러나게 되지요.

그러나 우리가 절대로 알 수 없는 영역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자유의지’입니다. 왜냐하면 그 자유의지는 가장 꽁꽁 감추어져 있고 또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심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몫은 오로지 하느님에게 달린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우리 자신의 모습을 가장 모르는 것이 보통입니다. 우리의 눈은 밖으로 나 있어서 내 주변 사람들은 곧잘 바라보지만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은 스스로 분별하지 않은 채고 그저 길들여진 대로 살아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우리는 때로 우리 스스로를 잘 살펴야 합니다. 나에게 들보가 있는데 남의 눈의 티를 꺼내겠다고 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짓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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