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건 가정이건 어떤 종류의 단체를 꾸려 나가는 데에는 여러가지 힘이 작용합니다. 가장 눈에 띄는 힘은 ’돈의 힘‘입니다. 대부분의 직장들은 바로 이 돈의 힘으로 굴러갑니다. 일하는 만큼 수익을 내는 그 힘이 있기에 그 단체가 운영되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 내가 일한 만큼의 수익이 더이상 나오지 않을 때에 그 단체는 파괴되고 맙니다.
물론 돈이 전부는 아닙니다. 다른 다양한 힘이 작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팬클럽 같은 경우에는 스타의 인기에 편승합니다. 그리고 그 스타에게 무언가 스캔들이 생기면 그날로 와해되고 말지요.
우리는 신앙의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주도적으로 묶는 힘은 당연히 ’신앙‘의 힘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으니 성당 안에서도 만만찮게 서로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얽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당에서 금전적 이득을 보려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성당에서 사람들의 칭송에 희열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모두 바람직하지 않은 힘으로 결국 종말에는 모두 사라져 버릴 유대관계에 불과합니다.
다시 돌아와서 우리를 묶어주는 힘은 바로 ’신앙‘의 힘입니다. 그리고 그 신앙은 필연적으로 ’하느님‘이라는 분과의 유대관계를 전제합니다. 즉,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그 힘으로 우리가 서로 묶여 있는 것입니다.
1독서에서는 이를 하나의 예시로 드러냅니다.
“나는 너를 네 자리에서 내쫓고, 너를 네 관직에서 끌어내리리라. 그날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 나는 힐키야의 아들인 나의 종 엘야킴을 불러, 그에게 너의 관복을 입히고, 그에게 너의 띠를 매어 주며, 그의 손에 너의 권력을 넘겨주리라.”
뽑으시는 분도 하느님이고 내치시는 분도 하느님입니다. 신앙의 힘 안에서는 하느님께서 주도적인 능력을 쥐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의 힘 안에서 우리가 이루어야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다잡는 것입니다. 그분과의 관계 안에 모든 것이 걸려 있는 셈입니다. 즉, 그분과 멀어져 있으면 아무리 세속적 힘이 강해도 의미없는 일이 됩니다. 반대로 그분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취급을 당해도 결국 승리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부자와 나자로의 비유는 이를 잘 드러냅니다. 화답송도 이를 노래합니다.
“주님은 높이 계셔도 낮은 이를 굽어보시고,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알아보시나이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 힘에 기대고 있을까요?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굳은 신앙 속에서 힘을 얻고 있을까요?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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