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죄짓게 하다
선은 악을 저지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악을 자극하여 그 악이 증폭되게 할 수는 있습니다. 이는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죄가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죄를 짓게 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죄한 이를 유혹하고 죄로 이끌어 죄에빠져들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에덴 동산에서 악마는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내면에 있던 작은 부족함을 자극하여 결국 하느님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죄를 짓도록 만듭니다.
불의를 저지르다
불의로 규정된 행동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 자체로 나쁜 행위들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불의의 핵심은 보다 내면에 존재합니다. 의도가 악하면 아무리 겉으로 선한 일을 흉내내도 그것은 악한 일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 마음이 없는데 그리스도인의 흉내를 낸다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 선한 일을 흉내낸다고 그것이 선이 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더 심오한 깊이의 불의가 됩니다. 위선과가식의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선을 흉내내는 것은 결국 그들의 내면 속에 숨기고 있는 더 깊은탐욕을 완수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종교’ 자체를 그러한 목적으로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이들은 훗날 매를 더 맞게 될 것입니다.
모세는 하느님과 마주하여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입니다. 신약성경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하느님을 뵐 것이기에행복하다고 합니다. 모세는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가진 존재였습니다. 자신들이 만들고 있던 황금송아지상을 부숴 버리고 그걸 갈아서 마시게 했습니다. 백성들이 모세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을 것은 뻔한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던 우상을 파괴하는 이를 좋게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술 마시는 사람에게서 술을 빼앗고 음란에 중독된 사람에게서 그 관계를 멈추도록 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가 반응하는 모습을 살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죄를 사랑하는 이는 그 죄를 멈추게 하면 분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의 백성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고 그들이 잘 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그가 돌보던 백성은 목이 뻣뻣한 백성이었고 죄악과 잘못으로 가득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의 신실함을 보아서 그죄를 용서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여기에 의인의 역할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죄 자체를 수용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않는 분’이십니다. 다만, 의로운 이의 헌신을 수용하는 분입니다. 즉, 아이가 잘못이 있어도 부모가 그 아이를 전담해서 그들의 오류를 고치도록 애를 쓰겠다고 나서면 아이들의 죄는 여전하지만 그 부모의 애틋한 마음을 보고 유예기간을 둘 수 있는 법입니다. 모세의 간청은 이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즉, 모세는 백성의 변화를 위해서 자신을내어바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십일을 보낸 것처럼 모세도 주님과 함께 밤낮으로사십 일을 지내면서 빵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습니다.
이런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입니다. 의인은 맑은 수정과 같아서 아버지의 의로움의 빛을 반사하기 때문입니다. 귀 있는 사람은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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