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언뜻 들으면 '예정론'적인 생각으로 들립니다. 한 번 주어진 은사와 소명이 철회되지 않으면 하늘 나라로 불린 이들은 무슨 짓거리를 해도 하늘 나라로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고 교회가 경고하고 가르치는 대로 지옥이라는 것도 무의미하게 되겠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이 철회될 수 없다는 것은 '당신이 뜻하는 바는 반드시 이루고야 만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원하시는 특별한 은사, 그리고 그리로 사람을 부르는 소명은 언제나 완성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상상을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려내시려는 거대한 모자이크 그림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하나 하나의 조각을 그 그림에 맞춰 나가십니다. 문제는 당신이 손에 드는 조각이 당신이 바라시는 가장 찬란한 빛을 내도록 부름을 받지만 신기하게도 이 조각은 저마다 '원하는 대로' 빛을 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란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조각이 검댕이 뭍어버린 더러운 조각이 되기도 하고, 평범했던 조각이 하느님이 원하시는 빛을 뿜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조각의 변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느님은 끊임없이 당신이 완성하시려는 그림의 최종 완성본을 바라보시면서 당신이 원하시는 자리, 당신이 원하시는 색깔에 합당한 조각을 찾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당신의 은사와 소명은 절대로 철회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하느님의 조각 가운데에는 '당신의 명을 충실히 이행하도록 부름 받은 백성'이라는 조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그 조각의 원래 색깔을 충실히 재현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반대로 행동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원래 이루어 내야 했던 가장 찬란한 영역은 오히려 유대인들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그 지위와 역할이 선물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에 따르면 하느님께서 원래 계획하신 당신 민족의 진정으로 영광스런 자리는 여전히 열려 있으며 따라서 유대인들은 언젠가는 하느님께 돌아와 그 자비를 입게 될 것을 희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흔히 가톨릭 신자들은 자신들이 이 시대에 하느님께 선택받은 민족으로 자신하기 쉽습니다. 사실 가톨릭 교회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내려오는 교회가 맞습니다. 문제는 그것은 하느님께서 현 시대에 마련하신 퍼즐의 자리이고 그것을 구체적이고 실천적으로 채워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들이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가톨릭 신자라는 이름을 지니고 교적을 두고 있다고 신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생활을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그 참된 자리에 합당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가장 바람직하고 좋은 자리를 선점하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과오로 그 자리에서 밀려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은 지금이라고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의 본질에 충실하지 않고 엉뚱한 일에 사로잡혀 허송세월을 하고 있다면 하느님은 유대인들을 배척하신 것처럼 우리 역시도 같은 취급을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를 굳게 신뢰하고 비록 어두운 세상의 현실 속에서도 당신의 말씀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하느님의 자비는 기꺼이 우리에게 선물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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