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 궁시렁거림이 달린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마주해도 그는 기뻐하지 않고 그 안에서 불평불만을 찾아내는 사람입니다. 영혼에 독이 든 사람이고 주변에 독을 퍼뜨리는 사람입니다. 가능하다면 그런 이에게서는 거리를 두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도 군중에게 설교할 때에는 그들에게서 ‘거리’를 유지하셨습니다. 그들이 밀쳐대는 것을 막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높은 산에 올라 가신다거나 호수에서 배를 띄워 그들과 거리를 두셨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은 언제나 주변에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 그런 일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일이 마음에 들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미 천국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한 삶을 바라보며 현실에 발을 붙이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그 부족해 보이는 현실을 바꾸어 나가는 것입니다.
판관기에서는 하느님의 도구로 쓰이는 일련의 인물들이 등장을 합니다. 그들은 모두 약했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힘을 얻어 자신에게 도전으로 주어진 과업을 성실하게 수행해 나갑니다. 내가 적극성을 지니고 나아가기 시작할 때에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납니다.
먼저는 일 자체가 변화할 수 있습니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것처럼 당장은 안되지만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도전하고 나의 실력을 쌓아 나가면 지금은 안되는 일이 나중에는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주변 환경을 개선하고 변화를 주도해 나갈 수 있습니다. 가능한 선에서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다음으로 나 자신의 변화입니다. 무언가 힘들고 불가능한 일에 도전할 때에 일 자체가 변화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나 자신이 변화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전에는 힘들게 느끼던 일이 덜 힘들어지기 시작하고 오히려 가볍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서서히 나 자신이 준비되어 갑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에 우리 안에 소중한 덕이 갖추어집니다. 바로 인내와 끈기라는 덕목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앞서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능력, 즉 은총입니다. 우리가 만일 우리 스스로의 능력에만 기대어 일을 바꾸려 한다면 그 일은 반드시 실패하고 맙니다. 우리에게는 하느님께서 함께하는 은총이 절실합니다. 우리가 지닌 신앙은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떠올리게 도와줍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있다면 우리에게 불가능이란 없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복음의 ‘부자‘에 대한 집착입니다. 우리는 현세를 살아가면서 부자이기를 원하고 갈망합니다. 그래서 그 집착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은 사실상 우리의 순수한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는 이라면 전혀 다른 가능성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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