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장
요한 복음의 1장은 창세기의 시작 부분을 흉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다르지요.
'말씀'이 계셨다고 전합니다.
이어 이 말씀은 '하느님'이었고 나아가 이 말씀은 '빛'이었다고 증언합니다.
요한 복음의 이 첫 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내용을 곧이 곧대로 분석하려 드는 것은 거의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서술하는 대상 자체가 인간의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 복음은 그것을 '비유'로 서술하고 있고,
따라서 우리는 그 비유를 따라 들어가야 합니다.
'말씀'
우리가 말을 하는 데에는 어떤 과정이 수반될까요?
내가 '지금부터 이 글을 쓰겠습니다'라고 입밖으로 내뱉을 때에는
그 이전에 먼저 '생각'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과 더불어 나의 '의지'가 존재하지요.
결국 말씀은 나의 생각과 의지의 산물입니다.
결국 하느님의 말씀은 곧 하느님의 생각이자 하느님의 의지입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지요.
그리고 이 말씀을 담은 우리들 역시 하느님의 생각과 하느님의 의지를 닮을 수 있습니다.
다만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하지요.
우리들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하느님에게는 불가능이 없으니
우리가 말씀을 담고자 노력한다면
어느 날엔가는 우리 역시도 하느님의 생각과 의지를 아무 거리낌 없이 담아내게 될 것입니다.
'빛'
빛은 다른 대상을 비춥니다.
사물들을 볼 수 있게 도와주고
어두움을 물리칩니다.
투명함이 있는 곳이면 이 빛이 스며듭니다.
가리워진 곳에는 빛이 들어가지 않지요.
빛은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빛을 가로막을 순 있어도 그 빛에 밝음을 더할 순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빛에 대해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맑은 마음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과 빛의 특징으로 우리는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반대로 생각을 하게 되면, '하느님을 거부하는 방법'도 알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의 자녀'
복음은 나아가 '하느님의 자녀'에 대해서 서술합니다.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닌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말씀을 받아들이고 빛을 쬐인 새로운 민족의 탄생입니다.
인종이나 부유함, 직분의 차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고 그분의 빛을 마음에 받아들인 사람들,
그래서 한 가족 안에서도 이런 차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신심이 깊다고 해서 아들이 무조건 신심이 깊을 리가 없고,
한 부부 사이에서도 한 사람이 하느님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해서 다른 한 편이 그래야 한다는 법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며,
그 때에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가졌던 모든 기틀이 '재정립'되고야 맙니다.
민족도 가족도... 심지어는 교회의 틀 마저도
새롭게 재정립 될 것입니다.
'요한'
요한은 증언자입니다.
요한은 결코 '빛 그 자체'가 될 수 없습니다.
요한은 말씀을 담은 '소리'일 뿐입니다.
예컨대 '난 널 사랑해'라는 말을 누군가는 한국어로, 누군가는 스페인어로, 누군가는 중국어로 말하지만,
그 내용은 모두 같습니다.
이처럼 소리는 다르게 들리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모두 같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소리'들입니다.
하느님의 생각과 그분의 의지를 담은 소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소리가 되어야 합니다.
"와서 보라"
말씀과 빛을 받아들이는 방법이다.
하느님의 말씀과 빛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어느 책에서 읽는다고, 전등 스위치를 켠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즉 고정된 틀로 무언가를 이루어 낸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과 빛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가서 보는 것'이다.
어디로 가서 무엇을 보아야 할까?
이것이 이후에 우리가 요한 복음의 나머지 장에서 배우게 될 내용들이다.
하지만,
요한 복음의 1장 마지막 부분에 기술되어 있듯이.
우리가 보게 될 것은 지극히 미미한 한 부분에 불과하다.
하느님의 나라는 경탄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의 털끝만큼도 짐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엄청난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 일을 위해서 준비해야 하며,
그 일을 위해서 이 세상의 것들을 과감히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시작부터 기죽지는 말자.
눈이 열려야 할 수 있다.
뭔가 손에 잡히는 게 있어야 할 수 있는 법이다.
다만,
'와서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