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가 자유로이 정상적으로 살아갈 때에 올바른 분별을 할 수 있다.
뭔가에 사로잡히면 그 생각에 얽매이게 된다.
귤과 사과가 양쪽에 있고 우리의 생각이 그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을 때에
둘 중에 지금 내가 먹고 싶은 걸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행여 '사과는 죄스런 과일'이라는 사고를 지닌 사람은
자신 앞에 놓인 두 과일을 합당하게 선택할 수가 없고,
당연히 사과를 거부하고 남은 귤을 집게 된다.
적지 않은 세상사 안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예컨대 두 문화를 놓고 보았을 때에 막연히 가지게 된 한 문화에 대한 우월주의는
다른 문화를 무턱대고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예를 들어,
한국 문화는 수천년의 역사 속에 삶의 지혜와 아름다운 전통 속에 이루어졌다.
하지만 서양 문화의 유입 이후,
만일에 지금 한복(개량된 생활한복이 아니라 오리지널 한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을
길에서 만난다면 우리는 이상한 마음부터 들게 된다.
이미 우리의 마음 속에는 막연한 서방에 대한 동경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흰 피부, 유럽식, 서구식, 꼬부랑 언어...
이런 것들에 대한 동경을 지니고 그 근원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채로,
그에 상대적인 것들을 막연히 무시해 버리고 만다.
그 밖에도 적지 않은 영역에서 이런 고착된 사고를 접하게 된다.
무언가를 합당하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사고'가 필요하다.
하느님이 만든 최초의 인간은 어떠했을까?
그들은 하느님과 자연 사물 사이에 관계를 잘 깨닫고 있었다.
하느님은 그야말로 천지의 창조주이시자 진정한 아버지였고,
만물은 우리가 잘 다스려야 할 대상이었다.
제대로 균형잡힌 상태였다.
하지만 이런 인간의 마음에 '하느님의 자리를 넘보는 마음'이 생겨나고
그런 시도를 하다가 도리어 자신이 가졌던 태고의 은총지위를 잃어버리게 된다.
결국 지금 우리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멀어져 그분을 잊고 살아가고,
우리가 다스려야 할 피조물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고 있다.
진정한 자유는 무턱대고 모든 걸 내 손으로 주무르는 것이 아니다.
이는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극도의 탐욕의 상태이다.
진정한 자유는 우리의 내면에 거리낌이 없이
모든 걸 순히 처리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하느님에게 순종하고
피조물을 피조물의 자리로 돌려놓는 것이 중요하다.
그때에야 우리는 정돈된 우리 내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진정 참된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여러분들을 사로잡은 것에서 벗어나라.
그리고 하느님이 여러분을 사로잡는다고 착각하지 말아라.
여러분을 사로잡는 게 있다면,
그건 규율을 정한 사람들의 모임이 제안하는 것이거나,
우리가 그렇게 느끼는 것일 뿐,
하느님이 아니다.
하느님이 명령하신 것 중에 우리를 구속하는 것은 없다.
하느님은 우리를 진정 자유롭게 하고자 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를 바라신다.
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