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에 앉아 싸우는 아이들
내가 이걸 하는데 너는 왜 저걸 하니!
내가 이쪽인데 너는 왜 저쪽이니!
나는 이 당인데 너는 왜 저 당이니!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저마다 자신들이 옳다고 나서니 누구 말을 믿어야 하고
어디로 가야할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어디에 서야 하는걸까?
나는 오직 신앙인들에게만 권고한다.
"하느님의 사랑 위에 서라."
그 밖의 것들은 원래가 이래도 상관없고 저래도 상관없는거다.
하느님 위에 선 사람, 그분의 사랑을 딛고 굳건히 선 사람은,
모든 것을 좋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미친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행동했고,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리며 먹보에 술꾼으로 보였다.
모든 사람이 숨을 쉬기에 살아가듯이,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사랑만 쥐고 있다면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든 살아갈 수 있다.
한창 정세가 어지러운데,
이당이니 저당이니 이 인물이니 저 인물이니 내세울 필요도 없고,
그저 내가 하느님 사랑 위에 서 있으면서 좋겠다 싶은 사람이면 그만이다.
두 친구가 곧잘 언쟁하는 것들은 사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한 친구가 신앙을 잃어가는 것으로 힘들어한다면
결연한 어조로 신앙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신앙인의 하나 장점은,
벼랑 아래로 떨어져도 그 밑에는 하느님의 사랑이 있다는 거다.
그러기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비신앙인'들을 조심하라.
내가 여기에서 구분하는 '신앙인'과 '비신앙인'을,
세례의 유무, 가톨릭 신앙의 유무로 따지지 말라.
'사랑'을 추구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인'이다.
이런 의미에서 '비신앙인'들을 조심하라.
그들은 신앙의 텃밭을 황폐하게 만들고
온갖 세상의 걱정거리들을 끌어다 와서는,
신앙의 소중한 밭을 시궁창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그는 열심하다는 종교인으로 등장할 수도 있으며
우리 주변의 전혀 의외의 인물일 수도 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할 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