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우리가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꼬마1: (사탕 2개를 가지고 있음)
꼬마2: 사탕 좀 나눠먹자.
꼬마1: 안돼, 내가 다 먹을거야.
꼬마2: 어차피 다 못 먹잖아. 좀 나눠줘.
꼬마1: 안돼, 다 먹든 못 먹든 이건 내 거야.
여기까지의 꼬마2의 생각이 우리가 세상 안에서 생각하는 정의입니다.
원래 있던 것을 상하게 하지 않고,
가지고 있던 권리를 지키는 것이지요.
자, 앞서의 상황에 어머니를 불러 볼까요?
어머니: 왜들 그러니?
꼬마2: 엄마 얘가 사탕을 두 개나 들고 있으면서 자기가 다 먹을려고 해요.
어머니: 사실이니?
꼬마1: 이건 내 거란 말이예요. 내가 힘들게 아버지 리모콘 드리고 받아온 거라구요!
어머니: 얘야, 리모콘을 가져다 드리는 건 네가 아들된 도리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아버지가 사탕을 주신 건 네가 이뻐서 그런거야. 그리고 네가 그 사탕을 나누어 먹으면
아버지가 얼마나 너를 더 이뻐해서 더 많은 사탕을 주시겠니? 생각해보렴.
(꼬마1은 계속 고집을 피우고 어머니는 울고있는 꼬마2를 데리고 가서 껴안고 위로해 준다.)
어머니가 생각과 행동이 훨씬 하느님의 정의에 가깝습니다.
강요하지 않고, 서로 사랑하길 바라고, 약한 자를 보듬어주는 그 사랑.
그것이 바로 하느님이 생각하는 '정의', 올바른 길입니다.
우리는 이 하느님의 '정의'를 배워 알면서도
끝까지 우리의 정의를 고집하고,
그리고 결국에는 우리가 정의라고 생각했던 대로
우리의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지 않는 이상은
'죄인'의 상태로 머물러 있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거부한 하느님의 사랑으로 죄인의 상태에 머무르는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그 인간적인 '정의'대로 죄인에게 합당한 대접을 받게 되겠지요.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은총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받지 않은 것이 없고,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며,
그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를 바라십니다.
하지만 이 '사랑'을 거부하는 이들이 있으니,
그야말로 불순한 소작인들이며
상속받은 하늘 나라를 힘으로 차지하려는 이들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들려진 하느님의 외아들을 보아야 합니다.
거기에 우리의 구원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삶을 본받아 살아가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 죄인들을 위해서 아낌없이 당신 생명을 내어 놓으셨고,
우리는 그분의 제자들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님이 수난하셔서는 안된다고 예수님을 꾸짖자
도리어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큰 소리로
"사탄아 물러나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고 된통 호통을 쳤지요.
하느님의 정의는 '십자가'의 '용서'와 '사랑'입니다.
이를 깨닫는 일이 어찌나 힘이 드는지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