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
어둠의 영에 대해서 잠시 생각을 해볼까 한다.
그 기원이나 종류 같은 건 사실 중요한 게 아니다.
알 수도 없을 뿐더러,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건 거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것들일 뿐이다.
정말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주제는,
과연 그들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이다.
물리적인 것들은 '물리적'인 방법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맛있는 음식 냄새는 우리의 코로 들어와 냄새를 담당하는 신경세포를 건드려서
우리가 맛있는 음식이 있다는 걸 인지하게 한다.
다른 시각도 마찬가지이고 청각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 '영'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양상으로 다가온다.
영적인 것들은 우리에게 영적인 차원에서의 작용을 야기시킨다.
그래서 일반 사람 중에 '사탄'의 형태(감각할 수 있는 외적인 형태)를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때로 그들을 시각적으로 보는 사람이 존재하긴 한다. 그들은 자기 수양을 지극히 쌓아, 영적인 것과 감각적인 것의 차이가 거의 없어진 사람이거나, 현세적인 감각이 지극히 나약해진 약자들이다.)
사탄은 '유혹자'로서 큰 역할을 담당해 왔다.
'유혹'이라는 것은 올바르게 걸어가고 있는 한 사람을 '꾀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목적은 그 대상을 '타락'시키기 위함이다.
창세기에서 그를 만나볼 수 있고, 예수님의 유혹에서도 만나볼 수 있는 그는
두 부분에서 '똑같은' 역할을 담당해왔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사탄은 우리의 마음에 '엇나가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결정은 우리 스스로 내리는 것이다.
욕구가 있다고 우리가 다 수용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 욕구에 저항할 수 있다.
미사 중에 배가 고프다고 밥을 먹어대지는 않는다.
소변이 조금 마렵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 중에는 좀 참아낼 수 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욕구에 저항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존재한다.
사탄은 우리에게 작은 강도의 엇나간 욕구부터 시작해서,
그 욕구의 범위를 점점 넓혀나가
결국 우리가 '선'을 향한 선택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예를 들면 이런거다.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하고 거짓말을 하면 안된다는 걸 잘 배운 한 여자 아이가,
남자친구를 만나고픈 욕구에 조금씩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며 밖으로 나다닌다.
결국에 엄마가 알게 되어도, 도리어 엄마에게 화를 쏟아 부으며 하던 일을 계속하고,
여전히 아빠 앞에서는 거짓말로 모든 걸 뒤덮어 버린다.
그러다 어느날 임신을 하게 되고,
거짓말은 종잡을 수 없게 된다.
결국에는 '낙태'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끝나버리고,
영혼이 나락에 떨어지는 체험을 하게 된다.
이 어둠의 영에 저항하는 방법은,
첫째는 "꾸준한 기도"이다.
하느님의 힘을 빌지 않고 이 어둠의 세력에 저항해 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둘째는 거룩한 시간과 장소에 참여하기이다.
우리 주변에 거룩한 시간과 장소가 존재한다. 성당, 성체조배실, 미사, 성시간, 사제의 강복 같은 것들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방법이며 사탄들의 하수인이 되어가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공간과 시간 안에서조차 헛 생각이 더 강하게 들게 마련이다. 사탄들은 자신들의 먹잇감을 놓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그냥 무시해도 좋다.
그러나 '사탄', '어둠의 영'이 분명 존재한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술을 도가 넘어설 정도로 좋아하는 사람,
도박에 빠져드는 사람,
성적 욕구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사람,
인간관계에 집착하는 사람,
재화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삼는 사람,
스스로 살피고,
'기도'로서 어둠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라,
우리 주님이 어둠의 세력을 무찌르고 세상을 이기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