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우리 몸의 부르짖음)
어제 하루종일 얼마나 많이 먹었던지
고만 위가 탈이 났다.
오늘은 좀 굶어봐야겠다.
위가 알싸리~ 한 것이 나에게 반항하고 있다.
"그러게 내가 작작 집어넣으랬잖아."라고 나에게 투덜대는 모양이다.
통증이라는 것은 우리의 몸이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는 수단이다.
통증, 고통은 우리 몸의 솔직한 고해성사이며,
따라서 우리는 통증이 오는 부위에 가장 먼저 관심이 가게 되어있다.
예수님을 머리로 한 우리의 교회도 하나의 몸이라고 생각해 보았을 때에,
마찬가지의 방법이 적용된다.
교회가 한 마음으로 가장 기도를 많이 하는 부분이 바로 아픈 부분이다.
실제로 그 기도는 가장 가난한 이들의 억압 속에서 저절로 이루어지고 있다.
헌데 사탄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영악한지,
신경계를 교란시키는 중이다.
실제로는 교회 내의 억압받고 소외받은 이들, 고아와 과부들과 죄인들이 아파하고
그들의 통증이 교회의 머리로 전달되는 것이 맞건만,
사탄은 우리가 엉뚱한 기도를 하게 만든다.
억압받고 굶주리는 이들을 위해 한 마음이 되어 기도하고 움직여야 할,
이 시급한 상황에,
자기 아들내미 대학 붙게 해 달라고
자기 직장 좋은 데 구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앉았다.
당신의 몸에서 발이 썩어나가서 조금만 있으면 걷지도 못하게 생겼는데,
손톱에 메니큐어가 마음에 안든다고 거기에만 온통 신경을 쏟고 있는 판이다.
무엇을 위해서 아파하는가?
무엇 때문에 아파하는가?
진정 가난한 이들이 아픈가?
아니면 교회에 황금 성작과 성합이 없어서 아픈가?
오늘은 내 위를 좀 보살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