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툼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루가 멀다하고 다툼이 일어난다.
일단은 '달라서' 그렇다.
나와 상대가 '완전히' 똑같다면 과연 다툴 일이 있을까?
내가 이 컵이 이쁘다고 생각하고 상대도 이 컵이 이쁘다고 생각하면,
서로 컵에 대한 다른 이미지를 상정하면서 다툴 일은 없을 것이다.
일을 해 나감에 있어서도,
내가 이 일을 마땅히 해야 하고 저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상대 역시도 똑같은 생각이라면 다퉈야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우리가 다툰다는 것은,
우리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하느님이 선물하신 하나의 축복인 '다양성'이다.
이 경우 다툼은 필연적인 과정이며,
우리는 그 다툼이 윤리적으로 파괴되지 않도록
'대화'를 통해서 서로 조정해 나가야 한다.
하지만 다툼은 서로가 같은 걸 원하더라도
최악의 경우에는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밥은 두 그릇이 있는데,
두 사람이 다가와서 한 그릇만 먹으면 될 것을,
둘 다 두 그릇을 먹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 경우 다툼은 '탐욕' 때문에 발생한다.
'탐욕' 때문에 일어나는 다툼은 최악이다.
이는 '대화'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서로 '이성'을 벗어난 것을 탐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유일한 해결책은,
한 사람의 '희생' 뿐이다.
인류 역사 안에서 '다툼'이 될 법하지도 않은 다툼이 하나 일어났다.
인간이 자신의 '탐욕'으로 신의 자리를 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거창해 보이는데,
좀 더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하자면,
'내가 원하는 것'을 신격화 시켜 놓아 버렸다.
하느님의 자리에 '돈, 이념, 자기자신, 명예, 권력' 따위를 놓아두는,
'진정한 우상화'를 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근데 하느님의 문제해결 방법이 좀 웃긴다.
하느님이 당신의 것을 다 내려놓고, 인간 세상에 오셔서는,
'죽어버리신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너무나 당연시하고
그 앞에 서 있으면서도 그닥 그분의 마음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일어난 일을 상기해 보았을 때에...
우리는 엄청난 사건을 묘사해놓은 상징물을 눈 앞에 두는 것이다.
'피조물을 너무나 사랑해 창조주가 자신을 희생한 사건.'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살라고 가르치셨다.
내가 살을 내어주어 너희에게 구원의 길을 마련했으니,
너희도 서로 살을 내어주어 형제에게 구원의 길을 마련하라고 하신다.
다시 원 시점으로 돌아가자.
단순히 '달라서' 시작되는 다툼은 '대화'로 잘 해결해 나가자.
그 다툼은 오히려 우리가 배우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탐욕'으로 시작되는 다툼은
조심하라!!!!!!!!!
왜냐면 그것은 우리의 영혼을 잠식해 들어오는 다툼이기 때문이다.
'돈'을 하느님의 자리에 놓지 말아라.
바오로 사도가 말했듯이,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죄악의 뿌리입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또 조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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