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묵시 7,14)
묵시록은 그리스도의 재림 사건을 환시로 보게 된 요한이 남겨둔 종말에 대한 기록입니다. 단순히 지금의 우리들을 겁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종말의 사건이 진행되어 가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가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인장을 받은 14만 4천명의 선택받은 이들과 이어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등장을 합니다. 바로 천상의 거주민이 될 이들, 하느님의 통치에 순명한 이들이지요.
하지만 그들이 의롭게 된 것에는 가장 핵심적으로 중요한 내용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바로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는 바로 위 구절의 내용입니다.
물론 이는 비유이고 상징입니다. 진짜 피로 옷을 빨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것으로 옷이 희어질 리도 없을 테니까요. 어린양의 피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징하고 그 피로 자신의 긴 겉옷을 빨았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시켰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나누어 졌다는 말이고 수난 당할 만한 잘못이나 죄가 없으면서도 그것을 스스로 받아들였다는 말이 됩니다.
이로써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모든 성인들은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이 수난 공로에 동참한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이들, 선과 진리를 알고 그것을 위해서 악의 행실을 참아 견딘 모든 이들이 해당되는 것이지요. 즉, 그리스도의 공로 없이는 구원받을 수 있는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시간’과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이전에 태어난 이들이건, 그리스도 이후에 태어난 이들이건 모두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즉 예수님만이 이 구원의 문을 열었기에 나머지 모두는 그분의 수난 공로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지요.
다음으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물론 구원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오지만 우리도 우리의 몫을 해야 합니다. 비유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피에 자신의 긴 겉옷을 담구어 빨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리스도가 세상 안에 오셔서 구체적으로 당신의 사명을 보인 뒤에 그 일을 알고 있는 우리라면 마땅히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차라리 그리스도를 전혀 알지 못했고 따라서 그런 모범 없이 나름의 윤리관으로 열심히 살아야 했던 이들이라면 오히려 상황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지니고 있고 그분의 모범을 따라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제가 기술한 이 내용을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하려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갈수록 더욱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남을 뿐이고 더이상 사람들은 그 본질을 이해하고 따르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 그 길을 성실하고 꾸준하게 가는 이들이 있으니 그들은 훗날 하느님의 어좌에서 함께 찬양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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