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묵시 2,4-5)
종말의 때를 묘사하는 묵시록은 참으로 이해하기 난해한 책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온갖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를 이용해 먹은 사람도 많습니다. 즉 자신들의 더러운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묵시록이라는 상징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겁을 집어넣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한 것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종류의 일은 아직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종말, 마지막이라는 것은 올바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종말은 여러가지 차원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통상적인 종말의 이미지는 세상이 끝장나는 것을 연상하게 합니다. 운석이 떨어지던지, 세계 3차대전이 일어나던지, 남극 빙하가 모두 녹아 해수면이 상승해서 모두 물바다에 빠지던지 하는 것들이 연상됩니다. 물론 모든 세상의 종말도 존재할 것입니다. 시작된 것은 마쳐지게 마련이니까요.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종말을 마음대로 상상해서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런 상상을 하면서 잊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개개인에게 다가올 종말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죽음의 순간이 곧 종말입니다. 지금의 이 세계와 작별을 하게 되는 순간이지요. 우리는 전체 구도의 종말을 그려보고 두려워하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종말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셈이지요.
요한 계시록은 단순히 세상의 마지막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우리 개개인의 모든 마지막 때를 준비시키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영원히 남을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어떤 준비를 갖추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요한의 계시록인 셈입니다.
그 가운데에 위의 구절이 등장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위의 구절을 요한 계시록의 원래의 목적에 합당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위의 말은 ‘에페소 교회’를 위한 전언이지만 우리 모두 각자에게 해당하는 글이기도 한 것이지요.
우리는 처음의 사랑을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말인 즉슨 우리는 처음에 사랑을 지니고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언제 사랑을 지니고 있었을까요? 우리가 아직 순수하던 시절, 우리는 마음의 맑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흠도 티도 없이 누군가를 의심하거나 악한 의도를 지니지 않은 마음을 의미하지요. 어린이의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마음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더이상 작은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보다 중요한 것들을 누리기보다는 세상이 중요하다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지요. 그래서 더 많은 돈에 집착하고 명예와 권력을 누리려 하며 외모에 집착하고 헛된 것들을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이 길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올바로 살펴야 하고 그것을 되돌리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종말의 때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지막을 잘 준비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을 위해서 우리에게 전해지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처음에 했던 일들, 작은 것에 감사하기, 늘 기뻐하기, 일상 안에서 새로운 것들을 찾고 경탄하면서 살아가기와 같은 어린 시절에 누렸던 것들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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