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루카 18,8)
때가 되면 이루어질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짧은 시선으로 분별하기 힘든 일들이지요. 우리는 지구가 어떻게 조성되었는지 직접 두 눈으로 관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우주의 시작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은 누군가의 근거 있어 보이는 주장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구원이라는 문제도 마찬가지 노선에 있습니다. 선과 악이라는 문제도 마찬가지이지요. 우리는 영원 안에서 그것을 바라볼 능력이 없습니다. 기껏해야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부분이 전부이고 그마저도 우리의 일생을 통해서가 아니라 지금 바라보는 부분으로 분별할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어두움과 악을 벌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의로움을 지켜낸 이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상급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꼭 우리가 바라는 식으로 이루어지라는 법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그 아무리 사악한 이들이라도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 싶어하시고 또 반대로 선한 이들을 시련을 통해서 단련시키고 싶어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판결은 이미 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 선을 사랑하시고 악을 미워하신다는 것이 곧 그 판결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믿고 기다리면 됩니다. 다만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더 선을 행하고자 노력해야 하겠지요.
헌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 심판을 이루고자 합니다. 악을 저지르는 자에게 기회를 앗아가 버리고 고통받는 선한 이들을 더는 보지 못하겠다고 나서지요. 하느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무엇을 마련하고 계시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셈입니다. 지금 눈 앞에 드러난 모습을 견디기 힘드니까요.
우리가 얻게 될 결론은 영원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끌어안으실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이신 분께서 영원한 부활의 삶을 선물하실 것을 굳게 믿었으니까요.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있을까요? 우리는 십자가를 지려 할까요? 어쩌면 우리는 아주 사소한 불편도 감내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요? 과연 우리에게 믿음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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