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다. (루카 16,13-14)
돈을 필요로 하는 것과 돈을 좋아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해서 필요한 것을 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지요. 하지만 돈 그 자체를 좋아하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게 됩니다.
도대체 그 두가지가 무슨 차이가 있느냐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외적으로는 거의 비슷해 보이기 때문이지요. 결국에는 재화를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내면이 전혀 다릅니다.
하나는 하느님이라는 최종 목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여러가지 수단 가운데 하나로 돈을 다루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돈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즉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위해서 돈이라는 것을 써야 할 때에 극명하게 드러나게 되지요. 이 때에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는 하느님을 위해서 아무런 스스럼 없이 돈을 포기하겠지만, 반대로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고 말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서 쓰는 돈은 전혀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해서 써야 하는 돈은 아까워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즉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일은 전혀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타인에게 유익이 되는 일에는 엄청나게 아까워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유익이 자신에게 전혀 돌아오지 않는 것을 아까워하는 것이지요.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그와 타인이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는 자신만의 우주에 사로잡힌 사람인 셈이지요. 타인과 진심으로 무언가를 나눌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모두 하나로 일치되어 있습니다. 반면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지요.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인들은 예수님 앞에서 그분을 비웃었지만 결국 자기들 끼리도 서로 일치하지 못하게 됩니다. 반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한 분이신 하느님의 아들 안에서 온전히 하나로 일치되는 이들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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