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마태 5,11)
하느님에 관한 것, 거룩한 것은 잘 숨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좀처럼 드러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성인으로 알고 있는 분들은 모두 생전에 박해를 받은 분들입니다. 자신의 거룩함으로 드높여지기는 커녕 거의 모두가 주변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힘겨운 도전을 이겨 내어야 했지요.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 그들은 보잘 것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눈에 띄는 외적인 모습을 전혀 갖추지 못했습니다. 학벌도 명예도 없었고 그저 일상적으로 우리 주변에 살아가는 소박한 착한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지요.
그래서 사람들, 특히 나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은 그런 이들을 괴롭히는 것을 즐겼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자신과 비슷한 나쁜 사람을 괴롭혔다가는 된통 당할 것이기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자신이 행하는 나쁜 짓들이 적당히 먹혀들 만한 사람들, 즉 괴롭혀도 별다른 소리 없이 묵묵히 지낼 수 있는 사람들을 찾게 마련이었고 그런 이들이 바로 하느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욕, 박해, 거슬러 거짓으로 하는 모든 사악한 말들이 선한 이들에게는 먹혀 들었던 것이지요. 즉 선한 이들은 악을 받았을 때에 악으로 되갚는 법을 모르는 것입니다. 왜나하면 그들에게는 악한 의도가 전혀 없기 때문이지요.
성경은 괴롭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합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르쳐주는 ‘방법’, 즉 악에 맞서서 싸우는 방법을 가르쳐주진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수난 당하는 이들을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십자가’를 드러내어 보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맞서 싸우고 내가 당한 만큼 되갚아 주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었지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실천해야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느님의 자녀들은 예수님의 길을 따라갑니다. 너무나도 선하고 사랑이 가득해서 세상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음으로만 비춰졌던 그분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지요.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1요한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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