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라는 말은 한국에서는 마치 신앙의 등급을 표현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즉 교황이라는 분이 가장 높은 곳에 그 아래에는 추기경단이, 그리고 이어서 주교단, 사제, 부제, 수도자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평신도라는 이들이 위치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개념이 아닙니다. 즉 피라미드의 개념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교회는 ‘네트워크’ 즉 거미줄과 같은 구조를 떠올려야 합니다. 권력의 상하부가 아니라 우리는 네트워크처럼 연결된 고리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아버지 하느님은 한 분이고 우리들은 모두 그분의 자녀들일 뿐입니다.
한 사람이 맺을 수 있는 관계성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교회 조직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황은 자신이 맺을 수 있는 관계성 안에서 세 가지 직무, 즉 ‘예언직, 왕직, 사제직’을 수행하고 주교는 주교 대로, 또 사제는 사제대로 자신의 고유한 직무 안에서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평신도는 그리스도의 같은 직분을 자신이 머무는 곳에서 이루는 이들을 말합니다. 평신도는 세상과 교회의 연결고리가 되는 것이지요. 평신도는 세속 안에 여전히 살아가면서 교회의 생명력을 전달하는 어찌보면 가장 중요한 일을 떠맡고 있는 이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회 안에서는 그런 소중한 면모가 올바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특히나 한국처럼 ‘위계질서’가 문화적으로 철저하게 수립되어 있는 곳에서는 주교와 사제와 같은 이들이 마치 옛날의 영주와 고관들처럼 받아들여지고 평신도는 평범한 민중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눈을 떠야 합니다. 주교와 사제와 수도자 뿐 아니라 평신도도 저마다의 고유한 사명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어찌보면 더욱 소중한 사명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사명’입니다.
복음은 어떻게 전파될까요? 복음은 꼭 성경을 옆에 끼고 길거리 모퉁이에서 외쳐야지만 전달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교라는 것을 특정 부분으로 축소시키려 하지 마십시오. 진정한 선교는 우리가 하느님의 빛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즉 그분의 진실과 선과 사랑과 의로움을 드러내어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보고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평신도의 사명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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