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루카 21,31)
우리는 많은 일들을 사전에 예측해 낼 수 있습니다. 비가 내리면 그 빗방울이 모이고 모여 결국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고 그 마침이 있는 법입니다.
이 세상도 시작이 있고 마침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흐름은 너무나도 장대해서 우리가 그 시작과 마침을 직접 목격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마치 거대한 모래사장의 한 알의 모래알과도 같은 존재에 불과하니까요. 무구한 역사의 한가운데 우리의 삶이라는 시간을 얻어 태어나고 죽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분명히 다가오는 시작과 마침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우리의 일생’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 시작과 마침을 제대로 체험하게 됩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잘 관찰하면 그 시작과 마침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제대로 된 지각 없이 태어납니다. 처음부터 어른들처럼 주변을 인식하는 아기는 없습니다. 아기에게는 모든 것이 경이이고 따라서 모든 것을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움의 시기가 다가옵니다. 이런 저런 것들을 익히고 습득하는 과정을 거치지요. 처음에는 아주 쉬운 것들로 시작하다가 시간이 갈수록 그 깊이와 범위가 넓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선과 악’에 대한 인식도 생겨나고 따라서 ‘죄’에 대한 인식도 생겨나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죄들을 짓게 되지요.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하면 안되는 것을 하고 탐하기도 하는 등 우리는 엇나가는 삶을 탐하고 그것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서 구원에로의 초대가 이어집니다. 하느님은 그런 우리를 위해서 올바른 길을 알려주는 수많은 기회들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어둠과 빛의 한가운데에 서 있게 되고 우리의 결단으로 빛을 향해 나아가거나 반대로 어둠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빛이든 어둠이든 우리 안에 축적해 나아가게 됩니다. 마치 담배를 처음 태우는 것과 수년을 태우는 것이 전혀 다른 것처럼 우리에게는 악습도 습득되어 가고 축적되어 가며 또 반대로 선행도 습득하고 축적되어 갑니다. 우리가 악에 다가설수록 더욱 더 악을 쉽고 잘 저지르게 되고, 반대로 선에 다가갈수록 선에 익숙해지고 선한 일을 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동안 그런 생활을 하게 됩니다. 선함에 머무르다가 유혹에 빠져 악으로 돌아서는 이들도 있고, 또 악한 생활에 머물렀다가 선에 이끌려 회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간은 마지막이 오기 전까지는 절대로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습니다.
헌데, 그런 과정의 마지막이 다가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의 순간은 ‘두려움’, 혹은 ‘기쁨과 설렘’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지요. 즉 악의 열매를 가득 채운 사람은 하루하루 시름과 걱정이 늘어가고 죽음을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반대로 선의 열매를 채운 사람은 이제는 진정으로 다가오고 있는 삶의 마지막 단계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루카 복음의 이 구절은 바로 생의 마지막 때가 다가옴을 인식하고 그에 상응하는 준비를 갖추라는 말입니다.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루카 21,29-31)
죽음을 떠올리면서 우리 안에 두려움이 증대되어 갈 때 우리는 잘못된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스스로 반증하는 셈이 됩니다. 반대로 죽음을 떠올리면서 안식을 기대할 때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는 것을 반증하게 되지요.
아직 젊은 이들은 아예 죽음을 떠올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할 일을 하겠지요. 선에 심취한 이들은 더욱 더 선을 갈구할 것이지만 사실 예수님은 구원 받을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수많은 영혼들이 낙엽처럼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형편이지요. 과연 마지막 때에 믿음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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