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과 나
하느님은 말씀하신다.
'사랑하라'
하지만 우리는 변명한다.
'하느님 저 사람은 이렇고 저렇고...'
하느님은 말씀하신다.
'용서하라'
하지만 우리는 변명한다.
'하느님 저 사람은 이렇고 저렇고...'
우리가 내놓는 변명, 우리가 생각하는 그 타당한 이유들을 하느님이 모르시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사랑하고 그럼에도 용서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뜻을 포기 못한다.
결국 우리는 하느님의 전능함의 자리에다가 우리 자신의 뜻이라는 우상을 세워 놓은 셈이다.
하느님의 뜻이 뭔지 모르겠다는 말은,
'왜 하느님은 내가 원하는 걸 똑똑하게 당신 목소리로 들려 주시지 않지?'라는 말이다.
하느님은 당신 뜻을 외아들을 통해서 온전하게 계시하셨다.
계시는 '완성'되었다.
그것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부활이었다.
이웃을 위해서 제 목숨을 버리는 사람,
당신을 따르기 위해서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사람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듯,
아니면 이해하기 싫은 듯,
늘 다른 이야기를 해 댄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우리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남을 심판하고 그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
그렇지 않다.
우리가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그만큼 우리는 더욱 미천한 사람이 된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픈가?
그럼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라.
당신이 세상의 이야기를 듣고
세상의 논리에 따라서 판단하고 살려고 하면 당신은 '세상의 자녀'이다.
그리고 세상의 왕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싶고 그분의 나라에 들어가고 싶거들랑,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
그게 그리스도인이다.
주일 미사 안 빠진다고 그리스도인이 완성되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갈 때에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오늘 하루도 이미 계시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도록 노력하자.
그것은 나를 죽이는 사랑이고, 내가 양보하는 용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