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먼저 하느님과 함께 살지 않는 이들부터 살펴봅시다.
하느님을 상실한 이들, 하느님이 없는 이들은
다른 걸 중심에 둘 수 없어 자기 스스로를 중심으로 내세웁니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바라는 것, 나의 느낌과 나의 존재가 가장 중심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내가 분별해야 하고,
오직 나의 이성의 거름망으로 걸러지는 것만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나보다 낫다는 무엇, 내가 상상할 수 없다는 무엇은 나에게는 어둠일 뿐,
세상의 중심은 바로 나입니다.
이들이 하는 선행은 계산적입니다.
그들이 한다는 선행은 결국 자기 스스로를 위한 행위입니다.
남들의 평판을 기다리던지,
아니면 선행을 입은 사람이 결국 나중에 자주성가해서 되돌려주기를 기다립니다.
적어도 그런 은근한 기대 가운데에서 선행을 합니다.
결국 손해보는 것은 없습니다.
이들에게 '손해'라는 것은 곧 자신의 죽음이기에
세상의 중심으로 우뚝 서 있는 자신이 죽을 수는 없습니다.
이들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되는 것이며
그래서 늘 '죽음'의 두려움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병이 나거나 문제가 생기면 극도로 불안해하고 초조해 하면서
어떻게든 주변의 상황을 조정해서 그 불안을 없애려고 노력하지만,
불안은 점점 쌓여만 갑니다.
오... 가련한 유한의 존재여.
하느님께서 다가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 분을 알아보지 못했고,
지금도 알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그분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하던 것과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모든 교회는 저마다 우리에게 다가오신 하느님의 모습을
작고 여린 아기인형의 모습으로 꾸며다가는
'아주 잘 차려놓은' 구유에다 안치하고 모두 가서 경배를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거기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그 성탄의 화려함과 기쁨과는 아주 동떨어진
오히려 정반대의 장소와 상황에 머물러 계십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너무 많이 해서 이제 그만 하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먼저는 '성탄'의 기쁨을 제대로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성탄은 화려함과 선물 속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셨다는 데에서 기쁨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탄의 미사는 참으로 소중합니다.
세상은 뜻도 모르고 성탄을 상품화 시켜서 부산을 피우는 가운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탄의 본래의 의미를 되새기며
성탄의 신비가 담긴 거룩한 전례에 경건하고 거룩하게 참여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찬의 전례에서 받아모신 '예수님을 모시고' 원하는 곳으로 가십시오.
가족에게 가는 이들은 가족 안에서 내가 모신 예수님을 드러내고
사랑하는 연인에게 가는 이들은 그들에게 예수님을 나타내며
그 밖의 모든 시간과 장소에서 우리들이 모신 예수님을 드러내십시오.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아멘.
두줄 요약
1) 예수님과 함께 하는 성탄의 진정한 기쁨을 누리자.
2)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을 드러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