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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안의 '성소'


일상 안의 '성소'

보호된 환경 안에서 깨끗함을 유지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정말 어려운 일은 온갖 더러움이 판을 치는 환경 속에서 깨끗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의 일상은 이런 위험 가운데 놓여져 있다.
일상 안에 찌들어 있는 더러움의 기회가 너무 많아서,
그저 작은 소홀함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런 사람들일지라도 특수한 환경,
어느 수도원에서 마련한 피정 프로그램에 넣어 놓으면
자연스런 '순화'를 겪게 된다.

늘 보아오던 텔레비전이 없으니
자연스레 시각을 순화하게 되고,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없으니
자연스레 청각을 순화하게 된다.
인스턴트 음식 대신에 수도원의 정갈한 음식을 먹을테니
미각도 순화가 되고
자연의 향내를 맡으며
후각도 순화가 된다.
굳이 예를 들면 촉각도 순화가 될 것이지만,
그건 그냥 넘어가자.

다음으로 밀려오는 것은 정신적인 영역이다.
평소에는 하루하루 당면한 일들로 생각도 안하던 것들이
이런 날에 한꺼번에 머릿속으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기억과 감정의 복잡 다단한 산만함 속에서,
보통은 그 '피정'은 마감되어 버리게 되고,
우리는 다시 일상의 찌듬 속으로 복귀한다.

일상 안에서는 과연 이러한 '순화'를 겪을 수 없을 것인가?
가능하다.
일단은 '자리를 피하기'를 실천할 수 있다.
하루를 살면서 조용히 머물 수 있는 5분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대부분 스스로 소란거리를 만들고 찾으며 지낸다.
대중음악으로 귀를 소란케 하고
이런 저런 기사들을 보면서 눈과 정신을 혼란케 한다.
특히나 '광고'는 우리의 현세적 욕구를 끌도록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텔레비전은 보지 않는 게 낫다.
물론 목적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한다.
텔레비전을 보는게 너무 싫어졌지만 가족과의 사랑으로 그 시간을 함께 할 수는 있다.
과감한 결단으로 일상 안에 '성소'를 만들어야 한다.

영이 맑아지면 맑아질수록
지금 무슨 일이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지 똑바로 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주변의 위험 요소를 분별할 수 있게 될 때에
비로소 그것을 피할 수도 있게 된다.
그 전까지는 아무리 이런 저런 것들을 피하라고 해도,
소 귀에 경 읽기일 뿐이다.

일상의 소요를 끊어버리기가
당신의 영성생활의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이 작업, '끊어내기' '가지치기'만을 잘 해도
영적인 진보가 단시일에 대단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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