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3주월요일
복음들 가운데 참으로 당황스런 복음입니다. 온통 사람들 이름만 주욱 나열해 놓은 다음에 끝나 버리니 처음 이 복음을 접하고 강론을 준비해야 했을 때에 얼마나 당황스러웠을는지는 지금도 충분히 상상이 됩니다.
첫째로 주목해야 할 것은,
요셉이라는 인물과 예수님이라는 인물은 우리가 아는 바 혈통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셉의 혈통이 아니라 성령으로 동정잉태하여 성모님의 피를 이어 받았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이 '족보'라는 것이 우리의 구세주의 탄생에 하등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구세주의 탄생과 이 족보 안으로 '영입'됨으로 인해서 오히려 이 혈통이 거슬러 올라 축복을 받게 되는 형상입니다. 결국 인간적인 것의 하찮음을 이 족보의 마지막 부분으로 인해서 알 수 있게 됩니다.
둘째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족보가 단순한 가계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족보의 핵심 인물들을 살펴보면 모두 '신앙의 선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다윗, 요셉에까지 이르는 굵직 굵직한 신앙의 가계도 안에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을 일찍부터 이루고 계시고 그 기나긴 인간사에 이르러 마침내 완성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신앙의 족보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짧은 시선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의 계획과 그 완성을 넌지시 살펴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하느님이 마련하신 거대한 줄기에 우리를 담그자'는 것입니다. 포도원지기는 언제라도 원하는 때에 다른 나무가지를 접붙일 수 있습니다. 나무 종자가 아무리 좋아도 포도원지기의 손길이 없이는 죽어버릴 뿐이고, 아무리 하찮은 나무라도 포도원지기가 손을 쓰면 훌륭한 포도나무로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그 광대한 계획 속에서 우리의 의지와 사랑은 지극히 하찮을 뿐이지만, 일단 그 하느님의 의지와 사랑에 우리를 봉헌하고 나면, 우리는 '하느님의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오늘 주어진 여러분의 '하루'는 여러분의 하찮은 계획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광대한 계획에 동참하기 위한 기회입니다. 한 사람을 만나더라도 여러분의 이기적인 계획을 바탕으로 만날 것이 아니라 진정 하느님을 그에게 전하려는 마음으로 만나시길 바라고, 작은 일을 이룰지언정 여러분의 뜻대로 이룰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십시오. 그렇게 여러분이 충실히 보낸 하루는 훗날 여러분의 영혼을 진정한 영원의 기쁨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3줄 요약
1) 인간사의 하찮음.
2) 하느님 능력의 광대함.
3) 하느님에게 동참하는 하찮은 인간은 영원의 일을 이룰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