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 미사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에는 부모에게 모든 걸 의지하다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스스로 모든 걸 꾸려나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서 점점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섞여들어 살아가면서 우리는 동시에 다른 것에서도 벗어나려고 노력합니다. 바로 '하느님'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우리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착각을 키우면서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의존'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나잇살이나 먹어서 여전히 엄마 아빠 밑에서 옹알대며 지내는 것만큼 추한 모습은 없습니다. 하지만 '근본바탕'을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우리가 '의존'하는 분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근본바탕'이 되는 분입니다. 부모에서 벗어나면 '자립심'을 얻지만, 하느님에게서 벗어나면 모든 걸 잃는 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에게서 벗어나려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찾으려는 것이 '재화와 건강'입니다. 이 둘은 하느님 없이 살아가려는 사람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자산이 됩니다. 하느님을 잃는다는 것은 곧 '영원한 생명'을 상실한다는 것이고, 영생이 없는 이에게 남는 것은 현세의 생명이기 때문에 이 현세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재화와 건강'이 더할나위없이 소중한 보물이 됩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이 두 가지, '재화' 그리고 '건강'을 위해 기를 쓰고 살아갑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소식에 귀가 솔깃해지고, 건강해진다는 건 뭐든지 시도해봅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건강'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전에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습니다. 내가 늘 지니고 있었던 건강이 사라질 줄이야.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가진 걸 다 탕진해 가면서 '건강'을 회복하려고 노력하지만, 한계가 있다는 걸 시간이 갈수록 깨닫게 됩니다. 이제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점점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비로소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그리고 '하느님'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비로소 사람들은 자신의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병고'가 하느님의 축복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축복'은 우리를 하느님에게로 이끌어주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전에는 단순히 돈과 명예, 내가 원하는 걸 이룰 수 있다면 '축복'이라고 생각했었겠지만 사실 축복이라는 것은 전혀 의외의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우리의 질병은 하느님 대전에로 우리를 이끄는 우리의 축복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이 축복을 받고 계신 분들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믿는 마음으로 간절히 주님께 청한다면 주님은 또다른 의외의 선물인 '치유'마저도 선사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설령 여러분이 오늘의 축복을 통해서 낫는다 하더라도 우리 인간의 근본 실존은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음'을 체험하고 하느님 대전 앞에서 심판을 받은 후에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세상의 똑똑하다는 이들은 여전히 자신의 돈을 꽉 움켜쥐고,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들을 찾으며 하느님을 무시합니다. 하느님은 이 신비를 여러분에게 밝히고자 마음 먹으셨습니다. 철부지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하느님에게 매달리셔서 '육신의 건강'이 아니라 여러분의 '영혼의 구원'을 간청하십시오. 그리고 때로 주어지는 선물인 '육신의 치유'마저도 받아 가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