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옷
자기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참으로 어색하고,
때로는 아예 입지 못하거나 옷이 찢어지든지
너무 작은 옷에 숨이 막히든지 하게 될 것이다.
사제의 옷이 있고,
수도자의 옷이 있고,
평신도의 옷이 있다.
누구나 제 몸에 제 옷이 딱 맞는 법이다.
하지만 특별한 복장도 존재를 하니, 파티를 위해 만든 옷이라던가
수영장에 갈때 입는 옷과 같은 것들이다.
사제가 때로는 평신도의 옷을 입기도 한다.
(내가 말하는 옷이 문자적으로 옷이 아니라는 건 이해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계속하겠다.)
사제가 신자들과 어울려 술을 한 잔 걸칠 수도 있고,
그들의 시름에 동참할 수 있다.
때로는 그들의 놀이에도 참여할 수 있고, 어울려 즐거움을 나눌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특별한 행사가 끝나면 돌아와서 얼른 다시 사제의 옷을 입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일주일의 7일 내내 평신도의 옷을 입고 돌아다닌다면,
그래서 정작 본연의 옷을 내팽개쳐두고 있다면,
이 사람은 언젠가 그 옷이 찢어지던지 자기 스스로 숨이 막히던지 할 것이다.
수도자도 마찬가지이니,
수도자는 청빈, 정결, 순명의 옷을 늘 갖춰입고 살아야 한다.
하지만 때로 사제의 옷을 대신 입고 신자들에게 다가서야 할 때도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힘들어하는 신자를 위해 신자의 옷을 살짝 입어볼 때도 있다.
헌데 그런 옷들을 원래의 옷보다 즐겨 입는다면 그것도 큰일이다.
평신도도 마찬가지이니,
피정과 같은 옷은 특별한 경우에 입고,
평소에는 일상 안에서 하느님의 거룩함을 직장 생활과 삶의 고난과 더불어 드러내야 함에도,
늘상 그런 특별한 옷들을 찾아 입기만 하려고 기를 쓴다면,
이 또한 실패이다.
'거룩병'에 걸린 사람들이 있으니,
무조건 성당에서 한다는 모든 것을 분별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평일미사에 사람 수가 적은 건 당연한 일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피곤한 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추스릴 때 찾기 위한 것이지,
무슨 주일미사 나가듯이 '반드시' 나가야 한다고 작정하고 다니는 것도 웃기고,
사제가 평일미사 안나온다고 신자들을 다그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제 옷을 입고 살도록 하자.
제 옷이 자기에게 가장 편하고 좋은 법이다.
사제는 맡은 직분에 충실하여 신자들을 성화로 이끌고,
수도자는 기도생활에 전념하며,
평신도는 일상 안에서 이웃 사랑을 통해 그 사랑을 실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