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생활의 영역
언뜻 이 말마디만 들으면 뭔가 연기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촛불 하나를 켜 놓고 앉아 가부좌를 틀고는 명상에 잠겨
기도를 바치는 한 수도자를 떠올리게 된다.
과연 영성생활이란 뭘까?
영성생활이란 그야말로 순전히 영적인 생활에 불과한 것일까?
영성생활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먼저 우리의 영성을 바로세우는 것을 말한다.
어질러져 있는 마음을 추스리고 하느님께로 마음을 모으는 것을 말한다.
1) 끊기.
쓸데없는 것들에게 먼저 마음을 잘 떼어내야 한다.
입에 초컬릿을 물고 다이어트를 시작했다고 하는 멍청이는 없다.
방에다가 시궁창 물을 줄줄 흘리면서 방을 꾸미고 있는 중이라는 사람도 없다.
영성생활을 시작하려면 먼저 이 '끊기'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아예 이것조차 시작하지 않은 채로
'어떻게 하면 앞으로 나아갑니까?'라고 묻는다.
먼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끊어라.
2) 진보.
이 진보는 더디다. 그리고 영성생활에서 진보라는 것은
나 자신의 측면에서는 거의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 앞에 엎드려 있는 것이다.
마치 사람이 아무 도움 없이 날 수는 없는 것과 같다.
우리는 비행기를 타던가, 번지 점프를 하던가 해야 한다.
다만 우리는 우리가 날 그 시간을 위해서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일,
즉 비행기 표를 사고, 번지점프대까지 올라가는 일을 해야 한다.
영성생활의 경우는, 기도, 단식, 자선이다.
3) ???
모른다. 자신을 끊고 하느님께 나를 맡기는 것 외에 무엇이 더 있는지.
하느님과 결합을 하는건지,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건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영성생활의 영역'이다.
영성생활은 단순히 추상적이거나 지극히 종교적인 상징들로 가득찬 행위가 아니다.
영성생활은 일상생활에 깊이 연관되게 된다.
묵상과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된 사람,
하느님이 가장 낮은 곳에 있다는 걸 알게 된 사람,
온갖 피정을 하고 본당에서 마련한 모든 좋다는 걸 다 수료한 사람이,
주머니 속에 동전을 그득 넣고도 길가는 중에 만나는 걸인이 내미는 손을 매정하게 뿌리친다면,
이 사람은 영성적으로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사람이다.
아니, 오히려 역행하고 있는지도...
영성생활은 우리의 삶을 초월한 무엇이 아니다.
영성생활은 우리의 삶을 '완성' 시키는 무엇이다.
영성생활은 일상을 도피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일상을 보다 충실히 살기 위한 것이다.
하느님 가까이 머물기를 통해서 우리의 일상의 수준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다.
전에는 단순히 세상이 나에게 주입시키는 욕구에 따라 살았다면,
지금은 내가 진정 원하는 욕구를 분별하고 심지어는 그것들마저 '절제'하면서 사는 것이다.
전에는 '인내', '선행', '기도' 같은 것들은 남들에게 내세우기 위한 무언가였다면,
그래서 오히려 나의 교만을 강화시키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인내', '선행', '기도'를 정말 남모르게 하려고 애쓰면서
미흡하나마 하느님께로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다.
영성생활의 영역은 단순히 추상적인 사고의 자리에 머무는 게 아니다.
영성생활은 당신의 생활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말하고자 하던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