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친구
적당히 이쁘장하고 외국말을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우리의 '주의'를 끈다.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호기심'으로 다른 한 편으로는 '호의'로 그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그와 '우정'을 맺어 보겠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이 우정은 다른 우정과는 좀 다르다.
우리는 아마 같은 수준의 한국 친구들에게는 보여주지 않을 우정을 그에게는 특별히 보인다.
왜냐하면 그와 맺는 우정은 나의 가치를 살짝 들어높여 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는 외국 친구가 있어'라는 자랑을 다른 이들에게 하면서 나의 존재를 높이려 한다.
그렇게 맺은 친구 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특히나 우리 한국 사람들의 '초대'관습에 따라서 우리는 그에게 많은 것을 베푼다.
음식을 사고, 커피를 사고, 선물을 사다준다.
그가 나와의 우정을 깨지 않도록 조심을 하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좋은 메이커의 카메라를 사서 그에 따른 렌즈와 악세사리를 구입해 가면서
그 카메라를 관리하듯이, 우리는 그 '외국인 친구'를 관리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으로 하는 것이지만,
이 우정은 진정으로 지속되지 못하는 한 때의 유행 같은 것이다.
그런 공허한 관계 이후 그 '외국인 친구'가 진정 어떤 마음을 지니게 될지는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베푸는 '물질적' 호의 속에서 그 친구의 마음에 '물질적 욕구'를
점점 키워 나가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균형 잡히지 않은 호의로
먼 나라에 보다 큰 목적을 지니고 온 이들을
쉽게 허물어뜨리고 만다.
모쪼록 이 글을 읽는 이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 친구가 되고 싶다면,
내면의 '호기심'과 동냥에 가까운 '호의'를 버리고
사람대 사람으로 다가서서 그의 영혼을 돌보라.
이건 외국인이건 내국인이건 상관없이 모두에게 똑같은 이야기이다.
그를 '대상'으로 취급하지 말고,
진정한 한 '인격'으로 바라볼 줄 알기를...
적당히 이쁘장하고 외국말을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우리의 '주의'를 끈다.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호기심'으로 다른 한 편으로는 '호의'로 그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그와 '우정'을 맺어 보겠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이 우정은 다른 우정과는 좀 다르다.
우리는 아마 같은 수준의 한국 친구들에게는 보여주지 않을 우정을 그에게는 특별히 보인다.
왜냐하면 그와 맺는 우정은 나의 가치를 살짝 들어높여 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는 외국 친구가 있어'라는 자랑을 다른 이들에게 하면서 나의 존재를 높이려 한다.
그렇게 맺은 친구 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특히나 우리 한국 사람들의 '초대'관습에 따라서 우리는 그에게 많은 것을 베푼다.
음식을 사고, 커피를 사고, 선물을 사다준다.
그가 나와의 우정을 깨지 않도록 조심을 하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좋은 메이커의 카메라를 사서 그에 따른 렌즈와 악세사리를 구입해 가면서
그 카메라를 관리하듯이, 우리는 그 '외국인 친구'를 관리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으로 하는 것이지만,
이 우정은 진정으로 지속되지 못하는 한 때의 유행 같은 것이다.
그런 공허한 관계 이후 그 '외국인 친구'가 진정 어떤 마음을 지니게 될지는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베푸는 '물질적' 호의 속에서 그 친구의 마음에 '물질적 욕구'를
점점 키워 나가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균형 잡히지 않은 호의로
먼 나라에 보다 큰 목적을 지니고 온 이들을
쉽게 허물어뜨리고 만다.
모쪼록 이 글을 읽는 이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 친구가 되고 싶다면,
내면의 '호기심'과 동냥에 가까운 '호의'를 버리고
사람대 사람으로 다가서서 그의 영혼을 돌보라.
이건 외국인이건 내국인이건 상관없이 모두에게 똑같은 이야기이다.
그를 '대상'으로 취급하지 말고,
진정한 한 '인격'으로 바라볼 줄 알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