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영은 언제나 떡밥을 던집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가 실제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그 중에 우리가 덥석 무는 것으로 어둠의 영들은 우리의 기호를 파악하게 되고 작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결국 이를 다시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한 사람이 죄에 빠져드는 것, 어둠에 빠져들게 되는 것은 단순히 한 인간의 외부의 어둠의 세력의 작용 때문만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에게도 그 원인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원하는 것들을 키워나가면서 넘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지요.
참으로 상상하기 힘든 일이긴 하지만, 만일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했다면, 하느님을 더 사랑하기를 원했다면, 참된 가치들을 바탕으로 이웃들에게 헌신하기를 원했다면 우리가 유혹에 빠져드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달콤한 것들을 원하기에 유혹에 빠지고 죄를 짓게 되는 것이지요.
결국 어둠의 영들이 원하는 것은 한 인간의 ‘의지’입니다. 그 의지는 통상적으로는 선을 향해 있지만 꼭 그러라는 법은 없습니다. 한 인간의 선한 의지가 수많은 시달림을 겪게 되면 그 안에서 악한 의지가 자라나게 되기도 합니다. 남을 해코지 할 생각이 전혀 없던 의지가 수도 없이 사기를 당하면서 그 자신도 남을 해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되는 것과 비슷하지요.
이 내면의 은밀한 변화 과정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 빠져드는 사람은 아직도 자신이 예전의 도덕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착각을 합니다. 아직도 본인 스스로는 선하고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지요. 이미 타인을 위한 공격의 수준이 도를 넘어 섰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지극히 도덕적이고 양선한 인간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오늘날 적잖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전혀 착하지 않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착하다고 생각하면서 자신들의 생각에 옳다는 일을 한다고 하면서 누군가를 해치려고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요. 그리고 그들의 활동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이 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범대로 하느님에게 우리의 의지를 내어맡기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나 길을 잃게 마련입니다. 예수님은 때로 물러나 기도하셨습니다. 언제나 군중 속에서 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고독의 시간, 즉 하느님 아버지와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 동안 아버지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야 할 길을 다시 찾을 수 있었지요.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는 절대로 교만하면 안됩니다. 하느님의 전능 앞에 언제나 우리가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우리 스스로 길을 찾겠노라고 나서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길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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