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에페 4,32-5,2)
예수님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우리가 종교적 색채를 잔뜩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신앙에 열심한 사람을 손꼽으면서 ‘미사에 자주 나가는 사람, 묵주기도를 많이 바치는 사람, 여러 신학 강좌를 섭렵한 사람, 피정을 자주가고 성지순례를 자주 가는 사람, 단식과 금육재 등 교회의 규정들을 어김없이 지키는 사람’등등을 생각합니다. 물론 그들이 드러내는 외적인 모습은 내적인 모습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외적인 모습이 거룩하다고 해서 내적인 모습도 그러라는 법은 없습니다.
정말 성당에 열심히 다니는 할머니가 어느 날 자기가 늘 앉는 자리에 물정 모르는 다른 할머니가 앉았다고 버럭 화를 낸다면 도대체 그 ‘열심한’ 할머니는 무엇을 위해서 열심했던 것일까요? 성당 봉사에 빠지지 않기로 소문이 자자하게 난 한 자매가 정작 집안에서 남편과 아이들을 소홀하게 대하고 제때 끼니도 챙겨주지 않는다면 도대체 그 자매의 봉사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이처럼 우리는 실제로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 몫은 오로지 하느님의 것일 뿐이지요.
다만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열심하다는 의미는 위의 성경 구절과 같은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너그럽고 자비로워야 하며 서로 용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요. 헌데 그 하느님은 드높고 거룩하신 분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결정적으로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당신 자신을 제물로 내어 놓으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바로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주님을 닮는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 안에서 열심히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어느 일용직 노동자가 정말 하루 온종일 육체 노동을 해 가며 쉴 틈 없이 살기에 주저앉아서 기도 바칠 시간이 없다 하더라도 그 일 안에서 동료들에게 온화하고 인내로이 다가서고 작은 실수들을 용서하고 또 그들을 마음으로 돕기 위해서 헌신한다면 그 노동자는 자신의 삶을 기도로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자신을 드러내기에 안달이 되어 있는 이들의 가식적인 열심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내면으로부터 알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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