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루카 19,6)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회개하는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회개하는 죄인은 곧 의인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에는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율법 규정을 잘 지켰노라고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진정한 의로움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옵니다. 사람은 결코 온전히 의로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것을 바라보는 지혜를 지니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헌데 그런 우리들이 서로 상대를 심판하기 시작하면 그 즉시 우리는 죄인이 되고 맙니다. 하느님의 영역을 침범하기 때문입니다.
흰 것을 희다 하고 검은 것을 검다 하는 것은 ‘분별력’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 이런 저런 가능성이 있는 것을 두고 ‘저것은 검은 것이야 절대로 희게 바뀌지 않아’라고 하는 것은 ‘심판’이라고 합니다.
모든 죄인들에게는 회개의 가능성이 활짝 열려 있고 우리의 주님은 바로 이를 위해서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성한 것을 모아서 자기네들끼리 잘 살라고 한 것이 아니라 부족한 것을 모아서 치유하고 고치고 힘을 북돋아 주어서 다시 일어나 가게 하려고 오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한 의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때로 지나친 결벽증에 스스로 주님 앞에 합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내가 이런 상태인데도 하느님께서 나를 만나러 와 주실까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느님은 바로 그런 당신을 찾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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