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사람이 온갖 선행을 할 능력을 갖춘 유능한 사람이 되게 해 줍니다. (2티모 3,16)
성경의 목적을 간결하게 잘 드러내는 구절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선행을 할 능력을 갖추도록 도와줍니다. 하지만 이 성경을 전혀 엉뚱한 목적으로도 쓸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의 정당성을 드러내고 더욱 교만에 빠져 들기 위해서 사용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이는 방향성에 기인합니다. 즉, 내가 하느님에게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을 나에게 끌어당길 것인가 하는 방향성에서 기인하는 것이지요. 하느님에게로 나아가려는 사람에게 성경은 유익합니다. 성경은 그 길을 올바로 가르쳐 주지요. 하지만 하느님을 나에게 끌어당겨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에게 성경은 정반대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성경의 지식은 그의 교만을 쌓는 데 도움을 주고 그는 편협하고 왜곡된 시각을 갖게 되지요.
이는 성경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근본 우리의 마음의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이 변모하실 때에 하늘에서 들려온 말처럼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의 나약함으로 예수님을 초막에다 사로잡아 두려고 했었지요. 헌데 그런 어리석은 행위를 오늘날 우리들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곧잘 하느님을 우리를 위해서 쓰려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해서 필요한 일을 하느님을 끌어다가 이루려고 하지요. 형제님들은 교회의 일이라는 핑계로 교회에서 ‘정당한’ 오락을 찾고, 자매님들도 집안 일에서 해방되려는 심정으로 교회에 열중하곤 합니다. 성당에서 틈만 나면 흥청대며 술을 마시는 게 일상화 되어 가고, 가정을 소홀히하고 성당에서 놀려는 자매님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에 귀를 열어야 합니다. 성경은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읽지 않고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훌륭한 신앙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적으로 규정을 완수한다고 해서 사람이 ‘선해지지’는 않습니다. 선이라는 것은 오직 하느님을 닮을 때에,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께서 원하시는 일을 할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집어들고 읽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주변의 혼잡함을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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